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특허 공방전이 사실상 애플의 승리로 끝났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주 애플 제품 수입금지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전세가 완전히 뒤집혔다. 곧이어 ITC의 삼성전자 제품 수입금지 발표도 나왔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는 예상외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ITC 결정을 미 대통령이 거부한 사례가 없었다. 반대로 오바마가 애플과 달리 삼성전자의 수입금지 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 언론이 `보호 무역주의 횡포`라며 거세게 비판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ITC 판결을 지켜본 한국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번 특허전의 진짜 승자는 애플일까.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의 완패다. 하지만 득실을 찬찬히 따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명분과 실리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사상 첫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미국 정부의 입지는 옹색해졌다.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가 자국기업을 노골적으로 편들었다는 낙인이 찍혔다. 삼성전자는 정당한 특허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비쳐졌다. 오히려 동정표를 얻었다.
실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가 수입금지 당한 제품은 이미 단종 된 모델들이다. 항소까지 하면 수입금지는 1년 가까이 유예된다. ITC 수입금지 조치에도 삼성의 매출 타격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특허료 싸움인 물밑 협상에서도 실리를 얻었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의 특허가 표준특허라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특허권료 협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표준특허도 이를 사용하려면 정당한 로열티를 내야 한다. ITC가 삼성전자의 특허권을 인정한 이상 애플은 향후 협상과정에서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보호 무역주의` 프레임에 갇혀 역정만 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지난 2년간 지루하게 펼쳐진 특허전쟁도 이런 식이면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끝날 것 같다. 세간의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 사생결단식 대결은 물밑에서 크로스 라이선스를 맺으며 끝날 공산이 크다. 천문학적인 마케팅 효과를 누린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 밀월도 끝이 보인다.
`세기의 특허전쟁`이 끝나면 전장은 법정에서 다시 시장으로 바뀐다. 무기도 혁신으로 바뀐다. 애플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포스트 특허전`에서 기선제압을 노린다. 다음달 열리는 개발자회의서 깜짝 발표를 준비 중이다. 첫 번째 보급형 아이폰 발표가 유력하다. `아이워치` 출시설도 나온다. 프리미엄 스마트폰만 고집해온 애플의 파격적인 카드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3`로 맞불을 준비 중이지만, 참신성에서 밀린다. 자칫 잘못하면 아성인 보급형 시장까지 잠식당할 판이다.
특허전은 이제 효력을 다했다. 전황이 지상전으로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해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은지, 삼성전자는 반문해봐야 한다. 가뜩이나 스마트폰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수익률은 가파르게 떨어진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유일한 맞수다. 그 힘은 재빠른 맞대응 전략에서 나왔다. 누구보다 우수한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았고, 특허소송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포스트 특허전` 역시 속도가 관건이다. 바로 보급형 시장이다. 애플이 준비 중인 보급형 아이폰의 맞대응 전략에 역량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효용이 다한 특허전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는 애플을 넘어설 수 없다. 명심해야 할 것은 특허전 다음은 혁신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냉혹한 전선에서 머뭇거리면 자칫 한순간에 낙오자가 돼버린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