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등화관제(燈火管制)

등화관제는 적기의 야간공습에 대비하고 그들의 작전수행에 지장을 주기 위해 일정지역 등화를 강제로 제한하는 일이다. 등화는 야간에 적기가 공습지점을 분간해 목표물을 발견하고 폭격하는 데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1970, 1980년대에는 심심찮게 등화관제 훈련이 진행됐다. 훈련이 시작되면 공무원들은 `불 끄세요`라고 외치며 골목을 돌아다녔다. 가정에서는 빛이 새어 나갈까봐 문과 창문을 두꺼운 커튼으로 가렸다. 백열등에 접시 모양으로 달린 검은 종이장치를 펴 불빛이 방바닥으로만 향하게 했다. 아예 불 끄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집도 있었다. 등화관제는 2차 대전 당시 주효한 작전 중 하나였다. 레이더로 공습지점과 목표물을 찾아내는 오늘날에는 의미가 퇴색됐다. 훈련도 사라졌다. 일부 RV(레저차량)에 등화관제 버튼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2013년 8월 오후, 거의 모든 관공서 건물 복도는 컴컴하다. 내부는 덥고 직원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부채질만 한다.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에어컨을 끄고 조명을 줄이고 나섰다. 사실상 업무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일부 관공서는 직원들이게 연차 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매일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기업의 전기 사용을 막는다. 이것도 모자라 전력당국 직원들은 업무일선을 떠나 전국 거리를 돌아다닌다. 수용가를 대상으로 전기사용을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몇 년 혹서기와 혹한기에 반복되는 전기와의 전쟁이 빚어낸 모습이다.

이 소란의 배경에는 무책임한 정부 정책이 있다. 안일한 전력수요 예측과 발전소 추가 건설만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겠다는 단순 정책의 결과다. 전기요금 개선과 효율적 에너지 사용을 위한 수요관리 정책 등 근본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은 적었다.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도 표류하기는 마찬가지다. 때가 되면 전력위기론을 고조시키며 고비를 넘자고 한다.

오늘도 폭염과의 전쟁을 치르며 `2013년판 등화관제 훈련`에 내몰리는 국민들이 분노를 넘어 씁쓸해 하는 이유다. 우리 국민은 과연 언제까지 등화관제 훈련을 치러야 할까.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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