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게임산업의 발전이 놀랍다. 질과 양적인 면에서 가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제 역으로 한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아쉽다. 규제 일변도로 이어진 지난 수년간의 정부 게임산업 정책이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과 기반을 무너뜨린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지난달 중국 차이나조이2013을 다녀온 한 게임업체 대표의 말이다.
중국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이제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우리나라가 위협에 직면했다. 수준 낮은 웹 게임 위주로 우리나라 시장을 노크하던 중국기업들이 대규모 자본력과 기술을 앞세워 온라인과 모바일게임 파상 공세에 나섰다. 한국 기업들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한국 PC방 게임의 40% 가량을 점유한 `리그오브레전드(LOL)`를 서비스하는 라이엇게임즈 역시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의 자회사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구검온라인은 중국개발사가 만든 게임이고, 티르온라인 역시 개발사는 중국 샨다게임즈의 자회사다.
모바일게임에서도 중국업체 쿤룬이 시장을 노크 중이다. 쿤룬은 다크헌터, 암드히어로즈, 천신 온라인 등을 구글플레이에 내놓아 한국에서 히트시켰다.
◇`유해 산업` 꼬리표가 발목 잡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게임산업이 이처럼 중국의 급성장을 눈 뜨고 볼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을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이에 따른 규제 일변도 정책이 불러왔다고 토로한다.
한 게임 업계 사장은 “정부에서 게임에 대해 규제를 쏟아내면서 다양한 게임 개발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규제가 청소년 이용가능 게임에 적용된 셧다운제다.
지난 2011년 11월 첫 도입된 이 제도는 청소년이 자정인 12시부터 6시까지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무조건 강제했다.
그는 “셧다운제 시행 이후 청소년이 이용가능한 게임이 대거 사라졌다”며 “게임업계는 아예 셧다운제를 피하기 위해 19세 이상 게임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게임 창작에서 특정 통로를 막다보니 다양한 게임 출시와 개발자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19세 이상 이용 가능 게임은 2011년 24.6%에서 2012년 28.4%로 늘었고 올 상반기 전체 게임의 37.8%까지 늘었다. 전체 온라인 게임 개발도 주춤해졌지만 청소년 이용가 게임은 셧다운제 이후 급격히 감소하고 이 자리를 성인용 게임이 채우는 구조다.
또 다른 게임업체 대표는 “셧다운제는 게임업체 실적 위축에 더해 게임을 사회적 유해물로 규정하는 근거가 됐다”고 지적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착화하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 게임업체 대표는 “건전한 게임마저 문제를 삼다보니, 한국 서비스를 키우는 투자나 일도 줄었다”며 “개발자 역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게임산업 진입을 꺼리는 일도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가 또 다른 규제 낳아
이중, 삼중의 규제 장치가 계속 이어지고 중첩되고 있는 것도 없애야할 문화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올초 셧다운제 확대와 기금조성을 추진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는 등 규제가 규제를 낳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만도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셧다운제를 확대하는 것을 뼈대로 한 법안을 발의했고, 신의진 의원은 게임을 중독산업에 포함시켜 매출의 5%를 기금으로 조성하자는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게임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게임이 사회의 표적이 되다 보니 여성가족부는 물론 교육부까지 나서 게임산업을 옥죄는 법을 만드는 데 앞장 선다”며 “이제 게임법은 진흥법이 아닌 규제법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규제가 이어지면서 게임산업협회조차 부정적 외부시선을 고려해 게임이란 명칭을 빼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고 말했다.
게임의 해악을 강조하면서 개발 토양이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최근 중국 기업이 빠르게 치고 나올 수 있던 데는 인구에 비례해 개발자와 작품이 쏟아졌지만 자국 게임산업을 우대하는 정부 정책이 한몫 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여러 규제로 인해 개발 토양이 척박해지면서 인력과 투자가 줄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역차별하는 일이 돼버린 셈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오해에서 비롯된 만큼 규제 일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옥 대전대 교수는 “셧다운제 외에도 웹보드 규제, 과몰입 규제 등 여러 규제가 쏟아지지만 근본적인 처리 방법이 될 수 없다”며 “결국 대부분 소통이 끊어진 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근본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해상 단국대 교수도 “세계 어디서나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통신을 법적으로 제어하는 셧 다운제나 기금 조성을 요구하는 법안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법안이다”며 “게임을 죄악시하는 규제 논리에서 벗어나 산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