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46>밀레니엄 버그 전쟁(1)

여름 휴가철이 거의 끝날 무렵인 1996년 8월 말 어느 날.

총무처 장관(현 안전행정부)이 보낸 `컴퓨터 소프트웨어 연도 표시방법에 대한 협조요청`이라는 공문이 정보통신부에 도착했다. 주미대사관 보고문을 첨부한 공문이었다. 문장은 짧았지만 내용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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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산원은 1998년 4월 30일 박성득 원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Y2K 문제종합지원센터 현판식을 가졌다.<한국정보화진흥원 제공>

“현재 정부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두 자리 숫자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연도 표시방법이 2000년대를 대비한 방법으로 조속히 전환될 수 있도록 전문 기술지원기관인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대책 방안을 마련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건우 주미대사(작고, 외무부 차관, 경희사이버대 총장 역임)는 그해 7월 31일자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미 정부기관 컴퓨터 2000년 연도 표시방법 전환이 시급하다는 기사 내용과 미국의 컴퓨터 2000년 표시문제(Y2K)를 다루는 정책을 보고하면서 `한국도 정부와 공공기관의 전산기 문제 여부를 정밀 점검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박 대사는 이런 내용을 외무부(현 외교부)와 총무처에 각각 보고했다.

박 대사의 보고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스티브 혼 미 하원 정부 관리, 정보 및 기술소위원회 위원장(공화당, 캘리포니아)이 그해 7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두 자리 숫자로 표시하는 정부기관 컴퓨터의 2000년 연도 표시방법을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전환하지 않으면 1996년을 96년으로 설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은 1999년 12월 31일 자정 이후에 00연도로 표시할 수 있어 주식이나 이자계산 등 금융거래와 퇴직급여 등 인사관리와 교통·통신, 국방체계 등에 치명적인 대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의 Y2K 문제 대응 동향을 보고했다. 미국은 이와 관련, 청문회를 개최했으며, 미 하원 소위원회에서 24개 정부기관을 조사한 결과 국제개발처, 인사관리처, 사회보장청, 중소기업청 4개 기관이 Y2K 문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하원 소위원회는 연도 표시 전환작업이 1998년 이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용량문제 등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내용이었다.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정통부는 그해 9월 2일 한국전산원에 `2000년대를 대비한 소프트웨어 연도 표시방법 대책 마련 검토`라는 공문을 보냈다. 정통부는 “현재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두 자리 숫자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연도 표시방법이 2000년에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9월 7일까지 통보해 달라”고 지시했다.

Y2K 문제 대책안을 만든 김원식 당시 정통부 산업지원과장(현 세종 고문)의 회고.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 역임)이 어느날 저를 불러 `김 과장이 Y2K 문제 대책안을 만들어 정보화기획실로 넘겨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한 달여 만에 대책을 마련해 정 실장과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강봉균 장관(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 16·17·18대 국회의원 역임, 현 군산대 석좌교수)의 결재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강 장관이 결재를 안 하셨어요. 경제학 박사인 강 장관도 Y2K 문제를 이해하지 못 하신 겁니다. 그래서 성장이론으로 필요성을 말씀드렸더니 결재를 하셨습니다. 이후 예산을 확보해 정보화기획실로 업무를 넘겼습니다.”

그해 7월 5일 정통부에 1급이 실장인 정보화기획실이 신설됐으나 업무이관 등으로 이 일까지 손댈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정홍식 실장이 김 과장에게 이 업무를 맡겨 Y2K 대책을 마련한 것이었다.

2000년을 앞두고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밀레니엄 버그 전쟁은 한국에서 이렇게 시작했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다.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과 디지털 재앙이라는 위기론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위기론자들은 컴퓨터가 오작동을 하거나 시스템을 잘못 통제하면 전기와 병원, 공항, 은행 등에서 초미의 상황이 발생하고 그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 1월 1일 0시로 시각이 맞춰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으며,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이 문제는 시대의 사기극으로 미국의 장삿속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0년 1월 1일. 새 2000년을 맞아 전 세계가 숨죽이며 우려하던 Y2K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통부는 당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만에 하나 준비를 소홀히 했다가 컴퓨터가 오작동이라도 하면 그것은 인재(人災)가 부른 밀레니엄 대재앙이었다.

한국전산원은 Y2K 본질과 선진국 동향, 대응 사례, 기술적인 대안, 전략 등을 분석해 Y2K 문제에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정통부에 보고했다.

대책을 만들었던 송관호 당시 한국전산원 표준화본부장(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숭실대 교수)의 말.

“정통부 지시로 직원 5명이 한 달간 Y2K 종합대책을 만들었습니다. 외국의 동향과 대응책을 분석해 우리 대응책을 마련했어요. 모든 일을 한국전산원에서 할 수 없어서 민간과 공공 부문으로 나눠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민간 부문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맡도록 했습니다.”

정통부는 1997년 들어 Y2K 문제 대응에 적극 나섰다. 그해 2월 14일 정통부는 정보화기획실에 Y2K 문제 종합대책반을 구성했다. 반장은 유영환 기획총괄과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이 담당했다. 실무는 손승현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통신기획과장)이 맡았다.

그해 2월 17일 정통부는 한국전산원에 공문을 보내 전산원에 `Y2K 문제 대책반`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Y2K 문제 연구회`를 각각 구성토록 지시했다.

정통부는 그해 2월 28일 서울 광화문우체국 4층 회의실에서 중앙행정기관 정보화업무 담당관을 대상으로 공공 분야의 Y2K문제 인식 확산과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Y2K 대응방안을 수립했던 송관호 한국전산원 본부장이 참석해 Y2K 문제와 대책을 설명하고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했다.

Y2K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산 확보가 가장 시급했다. 한국전산원은 이에 따라 예산 산정기준을 마련했다. 한국전산원은 기존 소프트웨어 개발비 산정기준을 활용해 Y2K 문제율과 난이도에 가중치를 두어 적용하는 안을 만들었다.

이 안의 타당성 검증을 위해 주요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6개 기관의 19개 정보시스템에 실사를 진행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얻어 그해 3월 13일 예산 산정지침을 마련해 정통부에 제출했다.

정통부는 행정전산망 등 공공 부문을 비롯한 일반기업 등이 Y2K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내에서 총 83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추정내역은 △일반기업체(이하 1996년 기준) 6700억원(기업체 약 3900개) △금융기관 1180억원 △행정전산망 260억원 △국방전산망 65억원 △교육·연구전산망 25억원 등이었다.

한국전산원은 그해 5월 6일 Y2K 문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통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 2개월이 걸렸다. 홈페이지에서 정부는 각종 기술적인 접근 방법과 외국의 동향, 사례조사 결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지침 등을 제공했다. 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했다. 이 홈페이지는 한국의 Y2K 문제 대표로 인정받아 미국 총무처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등 국제기구 홈페이지와 연결했고 1998년부터는 영문으로 국내 동향을 해외에 소개했다.

그해 9월 30일 오전. 정통부는 고건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역임)가 위원장인 제5차 정보화추진위원회에서 정보통신망 고도화 추진계획 및 지능형교통시스템(ITS) 기본계획을 보고했다.

정통부는 이 자리에서 컴퓨터 2000년 연도 표기 문제 해결을 위해 정통부에 `Y2K 문제 종합대책반`과 39개 기관에 부처별 대책반을 구성했고, 2000년 연도 문제 홈페이지 개설 및 세미나 개최 등 그간의 추진 경과를 보고했다.

국정감사에서도 Y2K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했다. 그해 10월 13일 한국전산원에 대한 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Y2K 문제를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박성범 의원(신한국당)은 Y2K 문제와 관련, 한국전산원에 설치된 대책반의 작업 추진현황을 물었다. 정호선 의원(국민회의)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환경 전산망이나 전산시스템은 Y2K 문제에 인식이 부족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998년 3월 31일. 국내 처음 국무총리실에 범정부 차원의 Y2K 추진체계가 구축됐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정통부, 총무처, 한국전산원이 참여해 마련한 `컴퓨터 2000 문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한정길 국무조정실 경제행정조정관(과학기술부 차관 역임, 현 한국원가관리협회장)이 위원장인 `컴퓨터 2000 문제 대책협의회`도 구성했다. 협의회는 Y2K 문제 컨트롤타워였다. 위원은 관계부처 실국장들과 학계 전문가로 구성했다. 협의회는 매월 회의를 열어 부처별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이견을 조정했다.

정통부에서 국무총리실로 파견 나가 협의회 간사로 일했던 신순식 과장(전남·부산체신청장, 한국부품소재투자기관협의회 부회장 역임)의 증언.

“정통부에서 1997년 9월 국무조정실로 파견을 나갔는데 이 문제가 제기됐어요. 정통부만으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이 일은 범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정통부에 힘이 실리고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판단에 협의회를 구성했습니다. 당시 변재일 국무조정실 산업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민주당 국회의원)도 위원이었는데 그해 6월 11일 1급인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직무대리로 발령이 났어요.”

그해 3월 8일 박성득 정통부 차관이 40년 외길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퇴임했다. 그는 3월 30일 7대 한국전산원장으로 선임됐다.

정부 종합 지원기관인 한국전산원은 그해 4월 30일 범정부 차원의 문제 해결을 위해 대책반을 Y2K종합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현판식을 가졌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는 민간 분야 문제 해결 지원을 위해 `Y2K 119 기술지원단`과 `Y2K 부당행위 상담센터`를 설치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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