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인문학 아닌 혁신없는 대학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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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임에도 대학가가 뒤숭숭하다. 진원지는 중앙대, 한남대, 경남대 등이다. 인문·사회·예술 관련 일부 학과를 없애거나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해당 교수와 학생이 반발하지만 대세를 바꾸기 쉽지 않다. 인문학과 폐지는 도미노처럼 번져나간다.

욕먹을 말이지만, 대학도 엄연히 기업이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경영을 잘해야 살아남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대학 당국에 인문학과는 낮은 취업률로 대학평가 평균만 깎아먹는 `구멍`일 뿐이다. 지원자도, 등록금도 적어 재정 기여도도 낮다. 경영 측면에서 돈 안 되는 인문계열을 축소하고 돈 되는 상경계열을 늘리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짧은 생각이다. 처방도 잘못됐다. 인문학이 돈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인문학을 대학과 그 구성원이 만들지 못했을 뿐이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학과 위기는 있지만 인문학 자체 위기는 없다. 더 밝다. 전자신문 독자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 기술기업 경영자다. 틈날 때마다 책을 읽고 독서토론 모임까지 가지는 이가 제법 많다. 기술과 경영책만 접하리라 여기면 오산이다. 인문사회책을 많이 읽는다. 기술경영도 실제로는 이 분야가 많다. 왜 이런 책을 읽을까. 경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늘 알고자 애를 쓴다. 사람을 탐구하는 인문학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기업에 인문학 쓰임새는 많다. 미국 기업을 보면 안다. 처음엔 테일러, 포드시스템과 같은 과학적 경영관리에 열광했다. 경영학 전공자를 뽑았다. 그런데 직원 심리가 생산성과 밀접하다는 연구가 나왔다. 심리학 전공자 몸값이 뛰었다. 어느 순간 직원과 조직 간 관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인류, 사회학도가 기업의 부름을 받았다. 사회가 다원화하고, 복잡해졌다. 디지털화하고 글로벌해졌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의 시대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고 순수 철학부터 어학, 예술까지 가리지 않고 인문학을 받아들인다.

우리 기업은 상경계와 이공계만 찾는다.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췄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애써 인문학을 찾아 배우는 상경·이공계 학생도 일부 있다. 불행하게도 이들은 문·이과 구분이 엄격한 대학 풍토 속에 좋은 학점을 받기 힘들다. 구직 가능성도 떨어진다. 여러 모로 우리 기업이 인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인재를 뽑기 어려운 구조다.

교육계와 정책 당국의 잘못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과 사회는 인문학을 더 찾는데 정작 교육계가 부응하지 않는다. 그럴 생각도 없는 듯하다. 학과 폐지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인문학·이공·상경계를 접목해 전문 지식과 상상력을 겸비한 인재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다급한 기업이 우물을 판다. 삼성은 인문학도를 채용해 SW엔지니어로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17년까지 4만 명 이상의 초·중·고 학생을 교육시키겠다는 `주니어 SW아카데미`도 문을 열었다.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 이해를 두루 갖춘 통섭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이런 시도는 삼성과 같은 기업보다 교육계에서 먼저 나왔어야 했다. 이런 혁신이 없으니 대학과 교육계 자체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과는 당장의 타깃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인문학적 기업`으로 봤다.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토로했듯이 그가 학생 때 서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애플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삼성의 시도도 인문학적 상상력이 없는 기술 기업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은 다음이다.

“회사에 시인을 영입하세요” 러셀 버만 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 주 전경련 하계포럼에서 활성화하지 못한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가치를 창출할 해법을 이렇게 제시했다. 우리 기술기업들은 이제 이게 무슨 말인지 안다. 대학과 교육계는 `알랑가` 모르겠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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