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융성, 콘텐츠가 만든다]<4>콘텐츠 가치평가 모델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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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나 증권사는 물론 정부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모태펀드에 기반을 둔 펀드를 찾아가도 콘텐츠 가치만으로는 융자나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문화융성, 콘텐츠가 만든다]<4>콘텐츠 가치평가 모델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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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콘텐츠가 만든다]<4>콘텐츠 가치평가 모델 정립해야

“콘텐츠에 대한 가치평가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영세사업자인 콘텐츠업체를 위해 보증제도를 해줄지 모르겠다. 콘텐츠공제조합을 만들기 전에 가치평가 모델을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지난 11일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콘텐츠공제조합 발대식 및 토론회`에는 여기저기서 콘텐츠 가치평가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쏟아졌다. 나온 얘기를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콘텐츠에 대한 가치 평가 모델을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어 창업 초기 기획서를 만들어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기관 등 투자기관을 찾아도 기획서만으로 투자나 융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영세 콘텐츠 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콘텐츠공제조합조차 가치평가 모델을 만들지 않은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할지 불안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 콘텐츠산업 선진국들은 금융기관들이 콘텐츠 산업에 저마다 기준을 만들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꾸고 물 주는 기준 있어야 꽃 핀다

콘텐츠 산업이 기술과 지식 집약적인 고부가가치산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은 경제적 가치의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에서 벤처산업과 유사하지만 산업적 특성에 맞는 금융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최근 들어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투자조합이나 완성보증제도 등으로 틀을 갖춰가고 있지만 11만 콘텐츠 기업의 수요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백승혁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현재는 제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중소기업창업지원법 등 콘텐츠 산업과 연관성이 적은 법령 적용으로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드라마나 영화 등 콘텐츠 산업 프로젝트 자금 모집에 모태펀드에 기반을 둔 문화산업전문회사(투자조합)가 주로 이용되고 있지만 일부 장르에 편중됐다.

지난 3월 기준 전체 411개 투자조합 가운데 문화콘텐츠 전문 투자조합은 70개에 그쳤다. 이 중에도 42개가 영화와 드라마로 전체 콘텐츠 투자의 절반을 넘어선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 투자가 늘었다지만 대다수 기업은 아직 혜택의 그늘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벤처캐피털이나 운용사들이 콘텐츠 산업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기획서나 기획자의 이력만으로 원활한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제작에 적게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이 소요되지만 한국에서 영세한 중소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용호 퍼니플럭스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장은 “우리나라에선 애니메이션 제작 준비단계에서 객관적으로 증명할 가치평가 모델이 없어 금융권이나 제도권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권은 회사의 크기나 매출로만 투자나 대출을 결정 짓는다"며 “기획자나 콘텐츠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사례가 없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이 제작해도 저작권을 해외기업과 나눌 수밖에 없다.

한류 영향으로 투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방송사 입김에 좌우되는 드라마 역시 자금 확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전문투자조합 투자를 받더라도 투자자 요구로 그 실패를 제작사가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여서 지속적인 영세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안성주 드라마제작자협회 홍보이사는 “외주제작사들이 기업 협찬을 받아도 10%가량만 회사로 귀속되고 대부분 방송사 매출로 잡히고 저작권마저 방송사로 귀속된다”며 “지식재산을 토대로 투자나 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영세한 회사를 담보로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자율로 융자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작과 함께 빚이 늘어가는 구조다.

금융을 통한 원활한 자본 공급이 없이는 기존사업의 지속적 발전도 어려울 뿐 아니라 신규기술 발굴과 사업화 기회도 잃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금융투자를 위해선 콘텐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백승혁 연구원은 “국가의 경제성장은 궁극적으로 산업 분야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얼마나 많이 지속적으로 생산하느냐에 달렸다”며 “이에 대한 결정요소는 금융인프라가 담당하고 이는 결국 투자산업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세분화된 가치 평가 모델 만들자

전문가들은 산업구조가 다른 다양한 장르가 걸쳐 있는 만큼 장르 특성에 맞는 가치평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렬 한국뮤지컬협회 사무처장은 “콘텐츠 산업은 만화·캐릭터,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음악, 공연 등 산업구조가 다른 다양한 산업이 산재해 있다”며 “가치평가 모델 역시 장르 특성에 맞게 세분화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문화의 다양성이 실현되기 위해선 다양한 가치평가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을 뮤지컬이나 연극 등과 같은 수준에서 가치를 평가하면 아직 산업화가 부족한 장르는 투자에서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 업체의 가치평가 모델 정립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만 금융권은 결국 성공사례가 많이 나와야 가치 평가 모델이 자리 잡고 기업 역시 재무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국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에 돈이 몰리고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은 성공모델이 차츰 쌓여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며 “이제 한류로 시작한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 역시 꾸준한 성공모델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투자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기업 역시 제작이나 기획 단계에서 재무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관리하는 인력을 동시에 갖춰야 영세성을 벗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표1/콘텐츠산업 종사자규모별 연도별 매출액 현황

(단위: 백만원)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표2/콘텐츠산업 매출액 규모별 연도별 사업체수 현황(단위:개)

자료:문화체육관광부

표3/벤처캐피털조합 현황 및 구성비 (단위 개·%)

자료:문화체육관광부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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