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두환 교수의 젊은 경제]이젠 스마트 무버다 <3>스마트 무버 제조업

스마트 무버(Smart Mover)에 해당하는 산업으로 지식산업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스마트 무버는 지식산업과 굴뚝산업 어디에나 적용된다.

우리 경제를 견인하는 산업 중 하나는 제조업이다. 우리 제조업의 강점은 빠른 추격자(Fast Fallower)의 특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좋은 물건을 남보다 더 잘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앞선 주자들을 쉽게 따라잡고 이겨낸다.

우리 제조업의 약점 또한 빠른 추격자다. 앞선 주자를 따라 하는 것은 잘 하지만 새로운 것을 앞서 만드는 것에는 자신이 없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투입하는 비용 즉, 개척 비용 또한 큰 부담으로 여긴다.

우리 경제 힘의 원천이던 제조업을 어떻게 이끌지 논란이 많다. 어떤 이는 한국이 재도약하려면 제조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사양산업으로 여기는 제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 나갈 수는 없는 걸까. 우리 경제의 원천인 만큼 그것을 유지하고 키워 낼 수 있는 방향을 찾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는 않을까.

제조업을 다른 나라로 옮겨 보냈던 미국에서는 최근 제조업 되살리기 노력이 한창이다. 노력의 결과로 미국에 제조업이 되돌아 오고 있다며 정부와 언론은 반가워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엔저 효과에 힘입어 제조업이 되돌아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제조업을 해외로 내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는 우를 범한 셈이다. 우리도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제조업이 다른 나라 후발주자에게 따라 잡히지 않고,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게 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성공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A사는 원부자재를 수입해서 조립한 후 다시 수출하는 전자제품 제조업체였다. 경쟁심화로 이익률이 저하되자 A사는 원자재 공급사에 성능개선을 주문했다. 하지만 해외 공급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기다리다 지친 A사가 직접 원자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렵다고 여겼던 개발은 그간 그 분야 기술 발전으로 생각보다는 쉽게 해결됐다. 필요한 요구사항을 잘 알고 있어 훨씬 성능 좋고 저렴한 원자재를 생산하는 게 가능했다. 회사는 원자재 자체 개발로 제품 이익률을 높였을 뿐 아니라 시장에 맞는 새제품을 앞서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금은 원자재까지 수출한다.

B사는 일본에서 사양산업으로 간주되는 은박봉투를 만드는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를 방문해 보면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마치 첨단산업 공장 같다. 구식 공정을 완전 자동화하고 전산화했다. 외부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최적화된 공정을 만들었다. B사의 자재·물류 창고를 둘러 본 IT 전문가도 감탄할 정도다. 고밀도·고층 적재, 자유로운 적재 크기, 로봇팔을 이용한 입출고 시스템 등 모든 게 첨단이다. 자신감이 붙은 B사는 그 시스템공정을 수출하려 한다. 그리고 무공해 은박봉투를 만들어 기존 플라스틱 용기를 대체하려 한다. 그린산업에 진출했고, 그 전망 또한 밝다.

C사는 선박 블록을 주문생산 방식으로 생산해 조선사에 납품하는 회사다. 큰 선박을 만들려면 선박 블록 크기도 커질 수밖에 없다. 대형화된 선박 블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이언트 크레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이언트 크레인을 공급하는 회사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크레인까지 독자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른 경쟁업체가 해낼 수 없는 대형 선박 블록 생산업체가 된 것은 물론이고 부가제품인 자이언트 크레인을 세계로 수출하는 기업이 됐다.

사례로 언급한 회사 모두 제조업을 진화 발전시켜 경쟁력을 한층 강화했다. 그들은 제조업에서 벗어난 새 사업을 시작하기보다 자기 것을 살펴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냈고, 신속히 실천에 옮겨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제조업을 버리지 않고 제조업 그 자체를 연구하고 신속히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더 나은 경쟁력과 부를 챙길 수 있었다. 이것이 스마트 무버 제조업이다.

이 스마트 무버 제조업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자기 사업에 만족하지 않고 빙산 전체를 다루고 파헤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 나는 선박 블록을 생산하는 C사에 IT를 접목,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진화하는 C사를 연구하며 내린 결론은 자이언트 크레인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숨어 있는 빙산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었고 또 그 빙산을 어떻게 다뤄야 성공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서울대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 초빙교수 dwight@snu.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