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벤처M&A 설문조사 결과
“국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에 대기업이 나서는 것에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지배하는 국내 M&A 시장에서는 대기업이 나서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의 국내 스타트업·벤처 인수 의향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이 같은 인식 탓에 삼성이 M&A에 관심이 크지만 대상기업은 국내가 아닌 해외기업에 집중돼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벤처기업 M&A 유도 정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나설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정부와 민간(대기업)의 심각한 M&A 인식 괴리감이 존재한다. 전문가는 대기업 주도의 벤처 M&A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는다면 선순환 창업·벤처 생태계 조성이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는 박근혜정부 창조경제 구현의 심각한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자신문이 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대표 김동호)와 공동으로 19일부터 21일까지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상당수가 대기업의 M&A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세부터 60세 301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삼성·LG전자 등 IT 대기업의 기술 벤처기업 M&A에 전체의 47.3%가 `부정적(막아야 한다)`이라고 응답했다. `긍정적(권장해야 한다)`이란 시각은 29.0%였으며 나머지 23.7%는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국민 절반가량이 대기업 M&A를 반대한 것이다.
삼성 관계자의 말처럼 정부 정책과 별개로 국민은 여전히 대기업의 벤처 M&A를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다. 이들 부정적 답변자를 대상으로 이유를 물은 결과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벤처 의지 차단`과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영역 확장`이 각각 42.3%와 40.8%로 대부분이었다. 나머지 16.9%는 `기술 탈취로 일자리 창출 기회 상실`이었다. 기타 답변은 없었다. 상당수 국민은 대기업이 벤처를 인수해 벤처 성장을 막거나 벤처사업 영역에 뛰어들어 시장을 교란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전문가와 심지어 벤처 업계 시각과도 반한다.
이민화 KAIST 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는 대기업의 벤처 M&A에 대해 “대기업 M&A가 한국 기업 생태계의 복합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도 한 강연에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잡아먹는 게 아니라 키우는 것”이라며 대기업의 과감한 벤처 M&A를 강조했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창조경제는 대기업 또는 벤처기업이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설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국민은 대기업이 외국기업 인수에 나서는 것보다는 국내기업 인수를 제안했다. 대기업이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외국기업 인수에 나서는 것에 전체 응답자의 38.0%가 `외국기업 인수보다는 차라리 국내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이는 `외국기업 인수는 상관없다`(34.7%) 또는 `대기업은 M&A를 해서는 안 된다`(14.7%)는 답변을 웃돌았다.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보다는 국내에 머무는 것을 희망한 것으로 대기업 M&A에 대한 인식 전환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연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외형 경쟁을 위한 M&A에 비판시각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M&A는 기업이 성장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이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