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안전규제기관의 인력확대와 조직재편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여름철 전력수급난이 가중되는 시점에서 가동정지를 전제로 한 시험검증서 조사에 대한 재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9일 관계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원전 관련 비리근절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안전규제기관의 인력과 조직편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원자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으로 대표되는 안전규제기관의 인력 한계로 원전안전과 관련된 조사와 규제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며 “특히 연구개발 분야와 안전 분야가 분리돼 운영되는 것이 원전안전에 취약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력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리가 확인됐다고 무조건 원전가동을 중단하는 조사방식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는 원전비리 재발방지를 위해 폐쇄적인 원전부품 납품 체계를 타파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부품업체와 시험·검증기관 간 유착관계에 있다고 보고 폐쇄적 원전부품과 검증업계 비즈니스 관행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또 국내 23기 모든 원전에 납품된 시험검증서에 대해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한된 규제기관의 인력으로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증폭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2~3개월 안에 약 13만건의 시험검증서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친다고 하지만 짧은 기간에 과연 제대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원안위 관계자 역시 “10명도 안 되는 해당 인력으로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전문 인력 보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원안위 9명의 위원들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만 상임위원이고 나머지는 비상임위원이라서 회의 구조도 문제다. 전문성과 결정권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안전의 핵심은 연구개발로 두 분야가 밀접하게 움직여야 한다”며 “연구개발 기관은 미래부에, 안전규제기관은 원안위로 분리된 구조가 전문적인 안전규제기관으로서의 역할수행을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원안위의 실무역할을 하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규제대상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상당수 예산을 받는 구조다. 철저히 분리돼야 할 안전규제와 산업진흥 분야가 어우러진 모순이다.
원전 비리 사건으로 전력수급 불안도 장기화될 조짐이다. 원안위가 전체 원전 12만5000건의 시험성적서에 전수조사를 실시하면 추가적인 원전 가동 일정 차질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전수조사 과정에서 비리가 발견될 때마다 원전을 세운다면 전력수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가동을 중지해야 하는 것인지, 가동하면서 보완 가능한 것인지의 기술적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이번 주부터가 최대 고비다. 전력당국은 징검다리 휴일이 끝난 뒤 첫 출근일인 오늘부터 본격적인 전력수급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분위기는 2년 전 9·15 순환정전 때와 판박이다. 9·15 순환정전도 추석연휴 이틀 뒤 직장인들의 대규모 업무 복귀와 멈춰 있던 공장설비의 가동, 여기에 갑자기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겹치면서 발생했다.
전력당국에 따르면 현재 공급능력은 6700만㎾ 수준이다. 9·15 순환정전 당시 전력사용량이 6726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심할 수 없는 단계다.
날씨 역시 평균 기온 26도 안팎에 지역적으로 최고 30도를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소 추가 동원 등 공급력 확대도 당장 기대할 수 없어, 현재로는 에너지 절약 노력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 대책으로 원전 정비일정이 기존보다 더 길어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력·방사선 관련 시장은 몇몇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하다”며 “다른 기업에도 기회를 주는 것은 좋지만 원전 정비 기간이 늦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력거래소는 최대한 가용할 수 있는 전력자원을 동원할 계획이다. 박종인 전력거래소 팀장은 “지금도 500만㎾가 넘는 수요자원을 동원 중”이라며 “수치상으로는 마이너스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전력도 전력수급위기 극복을 위해 한전과 전력그룹사 감사인력 100여명을 투입해 하계수급 비상기간(6∼8월) 고강도 특별점검에 나섰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