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00일은 한마디로 `춘래불사춘`으로 요약된다. 33년 3개월 만에 청와대 주인이 돼 돌아왔지만, 꽃샘추위는 매서웠다. 지난 2월 25일 취임식을 전후해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려 했던 적잖은 고위 공직자 내정자 및 고위 공무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청와대 생활 100일 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100일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국무총리 내정자, 국방부장관 내정자 등 고위 공무원의 잇따른 낙마와 성추문에 국민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인사와 관련해, 대통령의 의지는 단호했지만 일부 각료 내정자들은 국민여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이명박 정부 내각이 국무회의에 참가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 52일 만인 4월 17일 윤진숙 해양부 장관을 끝으로 조각이 마무리됐다. 100일 중 50일 정도가 내각 인사에 집중되면서 대선공약 및 정부 예산 집행은 다소 늦춰질 수밖에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미국 방문은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력에 후한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자는 데 합의했다. 특히 미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 연설을 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의 존재를 전 세계에 부각시켰다. 하지만 대통령 방미 기간 중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건은 국민적 지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사태로 이남기 홍보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온 지 100일도 못 돼 물러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긴장감이 감돌았던 한반도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점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한 개성공단 철수는 논란은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4월 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제한 조치로 촉발된 개성공단 사태는 북한 측의 근로자 철수 조치, 우리 인원의 전원귀환 완료가 이어지면서 잠정폐쇄된 상태다.
`을의 반란`으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여야 합의로 경제민주화 법안이 통과됐고, 그 동안 고통을 참아왔던 경제적 약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기자회견을 갖고, 대기업과 재벌의 횡포를 알리고 있다. 재벌 대기업은 강도 높은 사정 정국이 전개되자, 그룹 내부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청산에 나서는 등 정부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CJ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지면서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도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4대강 사업 및 원자력 안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와 감사에 착수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