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우선주의(Design First)`는 이노디자인을 세계의 수많은 디자인 컨설팅회사와 차별화하는 DNA다. 디자인 우선주의의 첫 외부 발표는 1999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렸던 `Design A to Z` 전시였다. 하지만 그 실체는 민철홍 서울대 미대 교수로부터 받았던 디자인교육에서 시작됐다. 그때 민 교수로부터 얻은 행운과도 같은 교육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대학시절 `A new way of what time it is`라는 작품은 우리나라 상공미술 전시회에서 두 번째로 큰 상을 받았을 정도로 화제였다. 나는 단순히 시계를 디자인한 게 아니라 시간표시 방법을 디자인했다. 요즘으로 치자면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속하는 아이디어였다. 40년 전 대학 초년생의 작품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미국 유학을 마친 후 이노디자인을 창업했을 때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의뢰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진행됐다. 나는 의뢰가 없어도 디자이너에게는 늘 할 일이 있다는 믿음 하나로 창업을 할 수 있었다. 내게 필요하지만, 어디에서도 살 수 없었던 물건을 디자인 하기로 했다. 비행기에 골프채를 실어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여행용 골프백이다. 브랜드는 전문가(Professional)와 기술(Technology)를 합성하고, 보호(Protection)의 의미를 반영해 `프로텍(Protech)`이라고 정했다. 2년간의 고생과 모험의 과정에서 실수를 거듭하며 나는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경험을 모두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엔지니어링, 금형 제작, 사출, 생산, 조립, 유통, 마케팅, 해외시장 개척 등 안 해본 게 없었다. 수 많은 미국 기업인들과의 협업과 한 생산기업 회장의 도움으로 제품은 탄생했다. 그해 미국 비즈니스위크에서 주는 `최고의 디자인 상품` 상과 생애 처음으로 디자인의 아카데미상인 IDEA상, 일본 G마크를 받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노디자인은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이노(inno) 브랜드로 헤드폰과 포터블스피커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노디자인은 휴대폰, MP3, 카메라 등 디바이스 디자인에 많은 경험이 있으며 그간 히트상품들을 쏟아냈다. 다만 유명한 상품은 모두 의뢰사 브랜드를 달고 나와 이노가 디자인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품들 대부분이 이노의 `디자인 퍼스트`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노가 먼저 아이디어 상품을 제안하고 클라이언트는 제안된 아이디어를 채택해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제 협상 테이블 자리를 바꾸려한다. 자체 브랜드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다. 생산업체들은 이노의 협력 파트너들로 선정됐다. 이노의 브랜드 상품은 파트너와의 협업으로 생산되며,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이노의 역할이 됐다. 나는 이노디자인 창업초기부터 프로텍 골프백을 시도했던 것처럼 자체 개발, 자체 브랜드 상품을 세상에 알리는 꿈을 접지 않았다.
디자인 시장이 달라졌고, 이노는 새로운 승부수를 던진다. 과거 상품개발은 대부분 생산업체 주도 하에 이뤄졌다. 미래 상품은 시장에서 소비자의 취향과 니즈를 찾아내는 디자인전문기업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유통기업의 조기 디자인 참여다. 유통기업도 색깔을 갖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는다. 진부한 상품을 가격으로 경쟁해서는 살아남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유통기업과 디자인기업의 협업으로 신상품이 탄생하는 시대가 온다. 생산업체는 디자인기업과 유통기업이 선진행한 신상품을 만들어내는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27년전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이노디자인을 창업하며 구상했던 `디자인시대`가 다가온다. `디자인 우선주의`가 브랜드로서 이노(inno)가 추구하는 차별화 전략이다.
첫 회를 소개했던 지난 1월 21일부터 오늘까지 34회에 걸쳐 연재해왔던 `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를 마치면서 그간 내 디자인 체험담을 사랑해주셨던 독자님들과 바쁜 일정 속에서도 편집에 열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전자신문 기자들, 이노디자인 스태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지난 5개월 동안 34개 디자인스토리를 독자들과 함께 체험한다는 일은 시작부터 설레는 일이었다. 마무리 하면서도 기분이 설레는 것은 내가 `디자인`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다. 새로운 경제 모델을 갈망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디자인은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21세기로 들어서며 시작된 인간중심 세상은 과거 산업시대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중심의 세계는 기술중심 시대와는 다른 배려, 감성, 문화, 사랑이 경쟁력의 키워드다.
34회에 걸친 긴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남기고 싶은 말은 `디자인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Design is loving others!)`이라는 오래 전 깨달음이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twitter@YoungS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