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새로운 것만 정답은 아니다

“30년 재직했고, 본부장으로는 6년째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30년 재직했다는 게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최근 쓰리엠, 도레이 등 미국과 일본 소재기업 본사를 방문했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재직 기간을 물었더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직장 개념이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이야 수긍이 간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도 대학 졸업 후부터 30년 넘게 한 회사에서만 일해온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게 놀라웠다. 미국에서는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게 능력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소재기업의 성장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갔다. 쓰리엠은 포드자동차에 공급할 연마재 기술에서 파생한 약 5500여종의 제품을 판매한다. 코닝 역시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의 필라멘트 보호용 유리에서 출발했다. 160년 동안 유리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 1위 유리기업이 됐다. 1926년 설립된 도레이는 레이온 원사 소재·가공 기술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신제품을 만들어 낸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랫동안 기술을 축적한 덕분에 장수기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소재의 질과 성능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기술이든 크게 변화를 주지 않는 오랜 성숙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쩌면 오랜 역사가 지금 현재 굴지의 소재기업을 탄생시킨 셈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일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임원 승진 나이도 점점 젊어지고, 임원이 된다 할지라도 1·2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 국내 기업들이 단기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급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돈이 될 만한 신사업을 찾아 헤매지만 오랜 시간 사람과 돈을 투입해 공 들여야 하는 분야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 30년 넘게 노하우와 기술을 쌓아온 `장인`을 찾기는 드문 게 현실이다. 그동안 장인을 예우하는 기업 문화가 없었던 탓이다.

새 정부가 `창조경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서 각종 구호들이 쏟아진다. 문화 콘텐츠, 벤처 기업 지원, 파괴적 혁신 등 새로움을 강조하는 말이 대부분이다. 전 사회가 새 것 찾기에 골몰하지만 아직 피부에 와닿는 느낌은 덜하다.

변화는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글로벌 소재기업들이 오랫동안 영속하면서 성장해온 역사에서 온고지신의 철학과 사람 존중의 미덕을 두고두고 돌아봤으면 한다.

소재부품산업부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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