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책이라고 하면 종이책을 먼저 떠올린다.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책은 종이책이 전부였다. `책은 모든 것의 지식`일 뿐 아니라 책갈피에 끼워진 나뭇잎처럼 누구나의 `스토리`가 숨어있다.
세상이 변했다. 종이책이 아니라 조그만 디바이스에 세상의 모든 책을 담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간단히 클릭만 하면 책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본다. 도서관을 통째로 휴대할 수 있는 감격을 느낀다.
그러나 환상은 잠시 유예된 듯하다. 지금 국내 전자책 환경에서는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보기 어렵다.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여러 권의 전자책을 출간한 작가로서, 여전히 목마른 갈급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에 잡혀있다. 잠재력이 뛰어난 작가들이 왜 전자책을 꺼리는지 밝힌다.
종이책 출판사는 대개 그 출판사 나름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철학 등의 인문서, 소설, 시집 등의 문학류, 자기계발서, 번역서, 판타지 장르소설 등의 전문성이다. 그런데 전자책 출판사는 자신만의 전문성이 전혀 없다.
또 종이책 출판사는 작가에게 계약금을 지불하거나 초판 2000~3000부를 먼저 출판하고 초판 1쇄에 선인세(先印稅)를 지불한다. 하지만 전자책 출판사는 대부분 규모가 영세한 탓인지 1쇄, 2쇄 등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 작가에게 계약금이나 선인세를 지불하지 않는다.
출판사마다 소설, 자기계발 등 전문분야가 없으니 작가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든 한꺼번에 섞인다. 그렇게 되면 독자는 새로 나온 책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워진다. 당연히 책도 잘 나갈 리가 없다. 전자책 업체는 대부분 작가 관리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 전자책으로 나오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거기다가 인세가 없으니 작가들은 전문적으로 전자책을 위한 작품을 쓰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전자책 출판사들은 실용서와 만화, 게임 스토리, 무협 등 장르소설에 치중하고 있다. 이미 종이책으로 출간된 책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조악하게 만들어 내기 일쑤다. 전자책의 특성상 읽기 쉽고 소비하기 편리한 종류의 책이 팔리는 측면도 있다.
몇몇 전자책 출판사들의 고무적인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 등과 해외수출 계약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 후 어떤 책을 수출했다는 건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수출해서 베스트셀러를 만들 질 높은 책, 즉 콘텐츠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번역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전자책 출판사도 불만이 있다. 작가들이나 종이책 출판사들이 기술을 가진 전자책을 폄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책 출판사들이 과연 책을 얼마나 읽고 있는지 작가로서 묻고 싶다. 아울러 문화의 흐름을 얼마나 탐구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전자책 스스로 문학적인 소양과 기획력 없이 오로지 금전적인 이익추구와 앞선 기술에만 매달린다면 전자책의 미래는 여전히 암담하다.
해외에서 반응이 뜨거운 책을 보면 대부분 소설류, 탐사다큐 등 `스토리`가 분명한 작품들이다. 국내에서도 `스토리`가 탄탄한 전자책이 나와야 한다. 전자책 출판사들이 시대의 코드를 제대로 읽고 스토리가 있는 작품의 개발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독자들은 더욱 전자책에서 멀어질 것이다.
요즘 정부에서도 우리 문화의 세계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나의 작품이 번역돼 해외에 진출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해외진출을 위해 2억원 예산의 번역료 지원을 결정했다. 콘텐츠 해외진출은 파급력이 크다. 문화부 지원은 이제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전자책 출판사에 바란다. 콘텐츠는 곧 스토리다. 스토리의 생산자는 작가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 줬으면 한다. 한국 작가들의 해외에서의 눈부신 성과를 기대해 본다.
하지윤 작가, jee66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