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눈 앞에 붙은 답답한 유리창, 일부러 안경을 쓴다고?

거리는 장날이다

장날 거리에 영감들이 지나간다

영감들은 말상을 하였다 범상을 하였다 쪽재비상을 하였다

개발코를 하였다 안장코를 하였다 질병코를 하였다

그 코에 모두 학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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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글라스(자료=구글)

돌테 돗보기다 대모테 돗보기다 로이도 돗보기다

영감들은 유리창 같은 눈을 번득거리며

투박한 북관(北關) 말을 떠들어대며

쇠리쇠리한 저녁해 속에

사나운 즘생같이들 사러졌다

-백석,

해가 기울자 장날 영감들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위도가 높은 북쪽 지역은 해가 낮아서 그림자도 더 길다. 개의 발처럼 뭉툭하게 생긴 `개발코`나 말 안장처럼 잘룩하게 생긴 `안장코`나 호리병 아랫부분처럼 도톰한 `질병코`도 아마 해의 방향이 바뀌면서 더 도드라져 보였으리라.

이들은 모두 돋보기 안경을 썼다. 석영 유리로 만든 돌테, 바다거북 껍데기로 만든 대모테, 미국 배우 헤롤드 로이드가 썼다고 이름 붙여진 로이도 돋보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시인은 석양빛을 반사하는 돋보기 안경들 때문에 영감들이 꼭 눈앞에 유리창을 달고 다니는 것처럼 봤다.

콘텍트 렌즈가 발명되고 라식·라섹 등 시력 조절용 수술 기술이 발달하면서 거리에서 안경 쓴 사람 수가 상당히 줄었다. 빛을 반사해 답답해 보이는 안경을 쓰는 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워서다. 어떻게든 안경을 벗고 싶었던 눈 나쁜 사람들이 안경에서 해방되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최근 다시 안경이 주목받고 있다. 시력을 교정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눈 바로 앞에 디스플레이를 띄워 데이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장치다. 지금까지 눈앞에 디스플레이를 띄워서 보여주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일본 소니는 줄기차게 머리에 쓰고 게임이나 동영상을 즐기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를 선보여 왔다.

상하좌우가 차단된 작은 화면을 눈에 갖다 대면 원근감에 익숙한 우리 눈은 60인치 이상 대형 화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관이나 대형TV 없이도 큰 화면을 즐길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소니의 제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일단 앞을 볼 수 없고 머리에 쓰고 있으면 무겁기 때문이다. 남들이 볼 때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구글이 내놓은 `구글 글라스`는 기존 안경과 디자인 차이가 없어서 거부감이 덜하다. 앞을 보면서도 디스플레이에서 띄워주는 증강현실(AR)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자동차에 적용된 헤드업디스플레이 내비게이션을 안경으로 옮겨와 안경을 보면서 길을 찾아 걸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구글 글라스는 다양한 기술의 총합체다. 투명한 유리에 헤드업디스플레이(HUD)를 구현하려면 화면 확대 기술이 필요하다. 피코프로젝터에 쓰이던 발광다이오드(LED) 레이저가 있어야 한다. 작은 화면을 크게 키워 주는 건 디스플레이광프로세싱(DLP) 기술을 적용한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디스플레이에서 작동시키려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도 필요하다. 눈높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려면 소형·고화소 카메라 모듈이 들어간다. 구글글라스에 장착된 골전도 스피커 기능을 삽입하려면 머리의 진동을 감지하는 센서도 필요하다. 대용량·소형·경량 배터리를 장착하는 것도 과제다. AR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 역시 필수다.

첨단 기술을 총망라한 이 안경이 현실에서 즐겨 쓰일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걸리적 거리고 무게감이 있다. 안경의 가장 큰 단점인 빛 반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눈을 보며 대화하는 사람의 특성상 안경을 쓰면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다. 구글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돋보기를 찾듯이 많은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다니는 혁명이 일어날지도. 조만간 SF 장르가 아닌 일반 문학 작품에서도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안경을 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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