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에 심각한 `경고음`
최근 유독 화학 물질 노출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우리 산업계에 심각한 경고음이 울렸다. 지난해 9월 구미공단에서 불산 누출 가스 사고가 발생한 후 6개월간 세 건의 사고가 추가 발생했다.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뜯어고치기 위해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국내에 불소 취급이 허가된 곳은 반도체 공장뿐이다. 반도체 공장은 첨단 시설이어서 충분히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은 불소 취급·관리를 사실상 반도체 업체에 위임했다. 유독 물질에 관한 전문성이 없어 어떻게 규제해야 할지도 모르는 탓이다.
정부의 믿음과 어긋나게 기업들은 유독 물질 누출 사고를 일으키며 허술한 관리 상태를 보여줬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유독 물질을 협력사에 맡기고, 담당자 한 명이 82개 업체를 관리했다. 대기업들은 안전보건협의체 회의도 거의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은 유독 물질 보관 탱크에 노후 중고 배관·밸브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에서 쓰이는 유독 물질은 대부분 10~35기압의 고압축 상태로 보관된다. 타이어 내 기압이 2.3 수준이다. 1기압에서 공기 이동 속도가 초당 500m 수준임을 감안하면 반도체 유독 가스가 얼마나 빨리 확산될지 짐작할 수 있다. 반도체 유독 가스는 인체뿐 아니라 공기·토양·하천에도 스며들어 장기적인 후유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반도체 유독 물질 사고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 미국은 노동성 산하 직업안전위생국(OSHA)이 유독 물질 취급 사업장을 엄격히 관리한다. OSHA는 유독물질 관리지침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 사고 발생 대응 매뉴얼 등을 담은 MSDS(Materials Safety Data Sheet)를 기업들이 준수하도록 한다. 이 지침을 세 번 이상 어기면 아예 폐쇄시킬 정도로 무서운 처벌을 한다.
고용노동부 불산 사태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00여건의 안전 규정을 위반했지만 부과받은 과징금은 2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솜방망이 처벌 탓에 기업들은 안전 규정을 무시하기 일쑤다. 법을 지키는 것보다 이를 무시하고 벌어들이는 이익이 훨씬 더 큰 탓이다.
정부도 관리에 손을 놓았다. 은수미 의원(민주통합당)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9년간 하도급 금지 유해물질 범위 확대에 관한 회의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유해물질 관리 하도급업체 실태도 파악하지 못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서 우리나라는 산재사고 분야 꼴찌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10만명 당 11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 영국은 10만명 당 0.7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유독물질 안전에 둔감한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대학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아세톤을 소홀히 취급하다 무거운 징계를 받은 한국 유학생을 본 적 있다”며 “우리나라 대학 실험실에선 각종 발암 물질조차 허술하게 관리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