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기획]<1>인터넷 검색, 그 `결정적 순간들`

인터넷은 미국에서 탄생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미국 국방부의 네트워크로 태동해 연구자를 중심으로 활용되다가 `월드와이드웹` 표준이 등장하면서 1990년대 급속히 보급됐다.

미국에서 1994년 라이코스, 1996년 알타비스타가 등장할 무렵, 국내서도 `코시크`나 `까치네` 같은 한글 검색 엔진이 나왔다. 전산 전공 학생이 실험적으로 만든 검색 엔진이었다. 한글과컴퓨터는 1995년 국내 기업 최초로 상용 검색 엔진 `심마니`를 개발했다.

닷컴 거품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 초기 국내 인터넷 시장은 야후·라이코스 등 해외 기업이 주도하고 다음·네이버·엠파스 등 국내 벤처가 추격하던 형국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인터넷 주도권은 완전히 국내 포털에 넘어온다.

국내 인터넷 검색의 역사는 해외에서 시작된 검색 기술을 현지화해 온 과정이다. 세계 어디보다 널리 보급된 초고속 인터넷 망 위에서 한국 사회에 맞는 정보와 콘텐츠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경쟁과 노력의 과정이었다.

외국계 기업은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 했다. 국내 기업은 승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다. 국내 사용자에 꼭맞는 맞춤형 정보로 사회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내부로만 사용자를 흡수해 인터넷 생태계를 키우지 못 했다는 비판이 갈린다. 한국 특유의 인터넷 환경은 어떤 시점에 탄생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일까.

◇사용자 의도 찾는 통합검색

`한국적 인터넷`이 만들어진 계기는 2000년 등장한 `통합검색`이다. 다음·야후·라이코스가 포털 3강로 꼽히고 네이버는 순위권 밖이던 시절이다.

당시 검색은 웹페이지를 성격에 따라 분류한 큰 범주를 보여줘 쉽게 원하는 정보에 찾게 도와주는 야후식 `디렉토리 검색`과 연관도에 따라 웹문서를 나열해 보여주는 웹문서 검색이 대부분이었다.

후발주자였던 네이버는 디렉토리와 웹문서, 지식검색, 뉴스, 백과사전 등 카테고리별로 관련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통합검색을 선보였다. 자체 검색 기술 `넥서치`를 이용했다. 카테고리마다 다른 정보 속성을 분류, 사용자 의도에 맞는 정보를 제시했다. 블로그나 뉴스, 웹문서 등은 각각 정보의 특성이 다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다른 정보 중 사용자 의도에 맞는 것을 찾아 카테고리별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사이트가 속한 범주를 보여주는 디렉토리 검색과 다양한 웹문서가 섞여 알아보기 어려운 웹문서 검색의 단점을 극복했다. 얼마 안 가 국내 포털은 모두 통합검색을 채택했고, 구글도 국내에선 채택할 정도로 표준적 모델이 됐다.

◇지식인에 물어봐

국내 검색 시장 판도를 바꾼 또 하나의 계기는 `지식인`이다. 역시 네이버가 주도했다. 2002년 시작한 지식인 덕분에 네이버는 이듬해 마침내 국내 검색 1위에 올라섰다.

지식인은 사용자가 직접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고 다른 사용자가 답을 올리는 서비스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책이나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선 해법을 구하기 힘든 일상의 사소한 내용까지 쉽게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비스 초기 하루에 1만건의 질문이 올라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1억번째 질문이 올라왔다. 지식인은 한국어 웹페이지가 부족하다는 국내 인터넷 환경의 약점을 사용자가 직접 묻고 답하는 역발상으로 극복했다. 빠른 통신망과 포털이라는 좋은 그릇에 콘텐츠가 비어 있던 진공 상황을 사용자의 참여로 메워나갔다. 이람 캠프모바일 대표는 “경험과 노하우를 다른 사람을 위한 지식으로 바꾸는 뿌듯함이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며 지식인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식인은 네이버가 처음 생각해 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갓 접한 네티즌 참여를 이끌어내고, 검색과 결합해 검색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통합검색과 지식인으로 주도권을 잡은 네이버는 2005년에 이르면 70%에 이르는 검색 점유율을 차지한다.

◇개방성이 가져온 변화, 열린 검색

지식인이 네이버 핵심 검색 콘텐츠로 자리잡고, 카페와 블로그도 업계 1위로 자리잡으면서 네이버 검색 지배력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네이버 내부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검색에 우선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풍부한 기존 웹페이지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제시하는데 치중한 구글 등 영미권 검색 엔진과 망이 먼저 깔린 상태에서 검색할 콘텐츠를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던 국내 인터넷 환경의 차이가 컸다.

2005년 엠파스가 네이버 등 다른 포털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열린 검색`을 내놓으며 논란이 불거졌다. 2007년 구글코리아가 활동을 시작하고 개방과 공유를 내세운 웹2.0 바람이 불면서 개방성에 대한 주문은 더 커졌다.

페이스북이 API 개방으로 외부 개발자를 끌어들여 생태계를 만들며 마이스페이스를 추월하고 트위터와 위키피디아 등 개방형 모델의 성공 사례가 해외에서 나왔다. 네이버와 다음도 2006년부터 주요 검색 기능 API를 제공, 사용자가 포털 데이터로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국내외 검색 관련 주요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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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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