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박근혜 대통령의 유리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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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됐다. 이 즈음이면 담임 선생님은 으레 장래희망을 조사했다. 그때마다 남자애들은 대통령, 여자애들은 현모양처라고 썼다. 아마 그들 부모로부터 들었던 모범답안이었을 법하다. 옛날 얘기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연예인, 교사, 의사 등이 장래희망 수위를 차지한다. 새 트렌드는 대통령이라고 쓰는 여학생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상황에서 21세기 알파걸이 이 목표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새 정부가 출범 열흘이 다 되도록 내각 구성조차 완료하지 못한 것에 따른 것이다. 여야 간 이견에 정부조직법 통과가 늦어진 것이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과 소통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박 대통령은 4일 `대국민 담화`라는 형식을 빌려 국회에 정부조직법 통과를 촉구했다. 2월 임시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시점에 가장 공을 들였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직후라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국민에 사과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국회를 압박했다. 정공법이었다. 여당 대표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아닌 대통령이었다.

담화는 관례적으로 마지막 수단이다. 대통령은 앞으로도 담화로 발표할 국가적 사안이 많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쓰기에는 너무 이른 카드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야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양쪽 모두 큰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좋든 싫든 정치는 협상이다. 또 대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이 절차다. 청와대는 국회가 괜한 발목을 잡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국회는 국민을 대표한다. 국회가 국민의 요구를 대변하는지, 왜곡하는지 국민이 판단하다. 이 점에서 대통령 담화는 선을 조금 넘었다.

얼마 전 한 매체가 박 대통령의 조각을 두고 `비주류 올드보이와 해외 인력 직수입`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닳고 닳은 주류 정치인과 거리를 두고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이들로 주변을 채우고 있다는 얘기다. 뒤집어 보면 `구악`들을 뚫어낼 정치력이 없다는 얘기도 된다. 새 정부 출범 지연이 정치권의 협상력 부재인지, 정치철학 차이인지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책임이 궁극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일생의 꿈과 목표를 대통령이 되는 것으로 삼았다면 그는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다. 그러나 좋은 정치,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였다면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여성의 입장에선 또 다른 바람도 있다. 유리 천장을 깨고 여성 첫 대통령이 된 그가 불통의 이미지로 또 다른 유리 천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제2, 제3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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