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의 디자인스토리]<12>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위한 디자인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CES 2013`이 열렸다. 2000여개에 이르는 세계 주요 전자업체들이 각종 첨단 전자제품을 선보이기 위해 참가하는 이 행사는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다.

지난해 CES 2012에서 나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컨셉트 디자인을 한 LG전자의 55인치 TV용 OLED 패널이 `Best of CES`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호평 중에서도 “가장 밝고 가장 얇으면서 그 무게가 16파운드(약 7.3㎏)밖에 되지 않고, 이미지 수준까지 좋은 최고의 기술과 함께 진일보한 디자인”으로 꼽혔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컨셉트 디자인은 시제품으로서 기술 양산 가능성을 점쳐보는 역할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국내 기업들은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박람회에 참여하면 `기술은 좋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세계 시장에 내놓고 판매할지의 고민이 부족했다.

당시 LG디스플레이도 그룹 내 LG TV에 가려 그 존재감을 알리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TV라는 대형 가전은 그 받침까지 넓적한 면의 해석이었다면 내가 진행한 디스플레이를 위한 컨셉트 디자인은 달랐다. 사람이 보는 디스플레이에 관련된 부분 외에는 모두 선 안으로 가뒀다. 디스플레이 외에 모든 눈에 띄는 부분을 최소화했다. 조작 버튼도 철제 실린더 안에 터치 버튼으로 감추고, 디스플레이에 대한 몰입도를 최대화했다. 미니멀리즘적 선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올해 CES 2013에서도 이슈는 디스플레이였다. 오감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보이는 것`에 대해 디지털 업계는 고민했다. 책과 TV가 먼저였다. 프레젠테이션 도구, 카메라 등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변화시킬 태세로 디지털화는 이어졌다. 디스플레이가 곧 조작 버튼이 되는 터치 스크린이 상용화된 지 얼마 안 돼서 연구와 발전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기술은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즉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없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이 적절한 비용으로 쓰일 곳이 없으니 아마 개발업체도 난감할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속도로 발전한다. 다음 세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이런 앞선 트렌드를 자신의 일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미래의 트렌드는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에 직접 가보는 것이다. 타임머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미래에 미리 가 볼 수 있냐고? 나만의 방법이 있다. 이매지닝(Imagining), 즉 상상의 힘을 이용한다면 우리는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얼마든지 미리 가 볼 수 있다.

먼저 눈을 감고 자신의 원하는 시간을 마음속으로 정한 후 상상의 날개를 펴고 조금씩 그 시간으로 날아가 보자. 지금이 2030년이라면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들고 무엇을 볼까?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듯 머릿속에 2030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다.

트위터에서 본 만화에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란 제목과 `앞으로 35년 후 우리들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질까`라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태양열 에너지·전기자동차·인터넷·DMB·휴대전화 등을 보면 1965년의 예측이 상당 부분 실현된 것이 놀랍기만 하다. 또 로봇이나 무빙워크 등의 기술이 있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도 가능성이 있다.

이정문씨가 그린 이 만화는 지난 1965년 한 학생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 공상과학만화에 나오던 것들이 현실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기술에 앞서 우리의 이매지닝이 있고, 기술의 발전 또한 이매지닝을 따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40여년 전에 상상 속 기술에 장기적으로 투자를 했던 사람이라면 지금쯤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5년 전 CES 2008에서 혁신제품 디자인상을 받은 `마이뷰 선글라스`는 이런 상상의 힘을 이용해 제품을 개발한 훌륭한 예다. 선글라스처럼 생긴 이 제품은 동영상을 재생하는 기기와 연결하면 바로 눈앞에 생생한 화면을 즐기게 해주는 새로운 제품이었다. 마이뷰를 착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놀라고 즐거워했다. 서울디자인올림픽 기간에 이노 부스를 방문해 마이뷰를 사용해 본 영국 BBC의 마이클 패스차드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이노의 마이뷰를 칭찬했다.

마이뷰는 영상을 보는 기능을 제외하면 보행자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일반 선글라스와 비슷하다. 내가 고민하던 디자인은 좀 더 세련되고 가벼운 진짜 안경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기술이 따르지 않아 절충된 안으로 나왔다. 걸어 다닐 때나 혹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사용자는 주변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나만을 위한 작은 영화관에서 영상을 즐길 수 있다.

이제 디스플레이는 휘어지고, 접히고, 말리고, 투명하기까지 하다. 기술은 완성에 가깝고, 그 때 내가 만든 것과 비슷한 제품들이 다양하게 연구된다. 다만 디스플레이 외 부품이나 개발 비용 등이 고가라 아직까지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을 뿐이다. 기술은 계속 발달해 디스플레이 이외의 것들은 점점 적어지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양한 기술과 융합해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새로운 개념의 디스플레이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팔릴 것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이며, 그 삶에 무슨 기술이 필요할지를 상상하는 것이다. 바로 내가 제일 잘하는 일, 이매지닝을 통해 그것은 조용하고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twitter@YoungS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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