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같은 종을 학대하게 하는 `가속성 공격 유전자`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 그녀는 한 평생 침팬지를 연구하며 살았다. 그녀는 인류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해지는 이 동물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1986년 발간한 `곰베의 침팬지`란 책에서 그녀는 침팬지 사회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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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달이 관찰했던 대상인 카사켈라 침팬지 공동체는 평소 성숙한 수컷이 사냥을 하고 영역을 경계하면서 암컷과 새끼를 보호하는 등 가족 구성원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인간처럼 사회성을 갖추고 문화적 전통이 생길 만큼 인지 능력을 갖춘 침팬지라 믿었던 그녀는 이들이 두 집단으로 나눠지면서 “폭력적인 공격성을 드러냈다”며 “특정 상황이 닥치면 침팬지들이 같은 종족을 죽이거나 잡아먹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인 인간도 법과 제도, 규범 등으로 사회를 평화롭게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살인·학살·전쟁 등 개인적인 그리고 집단적 폭력의 역사가 인류를 지배한 적도 많았다. 인간의 이기심부터 국가의 이해관계 등 다양한 폭력의 원인이 존재하지만, 인간 유전자에서 그 원인을 찾는 재미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속 병구는 한 화학회사 사장을 납치한다. 그를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안드로메다에서 찾아온 외계인이라 믿는다. 다양한 고문 방법으로 외계인의 `왕자`와 접촉하려고 하지만 사장은 병구를 `미친놈` 취급할 뿐이다. 병구는 아버지와 여자 친구가 죽고, 어머니가 뇌사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왕따가 된 모든 고통을 외계인의 탓으로 돌렸다. 병적 집착이 강해져 경찰까지 살해하려고 할 때, 사장은 입을 연다.

“75대조 선왕께서 우리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을 탄생시켰다. 너희 인간은 아름다운 문명을 이뤘지만 더 강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유전자를 변형시켜 강해졌지만 그만큼 공격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전쟁을 하고 수천 개의 분자탄이 터져 문명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때 끝이 났다. 한 선각자가 모든 생물의 유전자 샘플을 담은 배로 수만년 헤매다 작은 땅에 정착해 새 문명을 이어나갔지만 너희는 유전자 변형의 부작용으로 급속도로 퇴화했다.” 성경을 묘하게 패러디한 사장의 말은 인류 문명 이전을 설명한다. 외계인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이란 설정은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교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교과서에서 배운 인류 문명은 지금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너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 진화의 길을 열어줬지만 우린 눈뜨고 못 볼꼴을 보고야 말았지. 너희처럼 같은 종을 학대하고 즐기는 생물은 없어. 그게 다 그 유전자 때문이야. 너희 조상들이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심어놓은 가속성 공격유전자. 그 빌어먹을 유전자가 니들 몸에서 자라나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단 말야. 우린 그 유전자를 없애려고 온거야. 너희들을 구하러 온거야.”

가속성 공격 유전자가 실제할까. SF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상의 유전자지만 유사한 매커니즘을 가진 유전자가 분명 존재한다. 바로 MAOA 유전자다. 그러나 영화와 다른 것은 MAOA 유전자 자체가 인간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유전자가 활성화 되지 않을 때, 인간의 공격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MAOA유전자는 `폭력 유전자`라 불린다. 이 유전자 자체는 뇌에서 긍정적 역할을 한다. MAOA 유전자가 활성화 되면 세로토닌 분비와 활성정도가 높아진다. 즉 MAOA 유전자가 짧거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세로토닌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세로토닌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분자다. 실제로 호르몬이 아닌 신경전달 물질이지만 일반적으로 `행복 호르몬(Happiness Hormone)`이라고 일컫는다. 세로토닌의 반작용, 즉 이 행복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고 스트레스나 폭력적 성향이 강해진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영화 속 병구도 MAOA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사장을 고문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폭력적인 병구도 태어날 때부터 고통받던 약자였다. 약자의 폭력성은 단순히 세로토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회 매커니즘이 있다. 동족 스스로를 증오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뿐이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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