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장비 보호무역전쟁, 대책 급하다]<하>산업 자주권 회복 나서야

최근 격화된 통신장비 보호무역전쟁은 글로벌 정보 주도권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통신 장비 시장규모도 크지만,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의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 장비에 보안성을 의심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진우 고려대 교수(전기전자전파공학부)는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이 자국 정부와 연대해 타국을 압박하는 것은 그만큼 산업의 시장가치가 크기 때문”이라며 “지역 네트워크에 흐르는 정보와 시장 자체의 금전적 가치를 결합해 보면 통신 인프라 산업은 굉장히 폭발력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미국, 중국 등에 비해 우리나라는 통신 인프라 산업 전반에 대한 가치평가가 부족하다.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문, LG에릭슨 기업 부문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기업 투자도 거의 없다. 산업을 받치고 있는 대부분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해 단기 실적이 가능한 솔루션에 집중하는데 급급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산업 보호정책 부실 △약화된 산업 경쟁력 △수출 미흡 등을 국내 통신장비 업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들 요소가 서로 얽혀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수관리가 안 된다는 점은 대부분 국내 시장에 의존하는 중견·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나아지지 않는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최준균 카이스트 교수(전기전자공학과)는 “국내 ICT 산업 구조는 전형적인 해외 네트워크 장비 의존형”이라며 “80년대 TDX, 90년대 CDMA 개발로 IT강국 초석을 다졌지만 이후 초고속 인터넷 등 인프라 구축 중심 정책 추진에 따른 해외 네트워크 장비의 무차별 수입으로 IT 소비 강국화가 되어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뒤쳐진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내수시장 생태계를 선순환 시키는 것이 우선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수 생태계 확보가 곧 악순환 고리를 깰 열쇠라는 것이다. 대규모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 프로젝트에 국내 기업 참여 폭을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이나 인도가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구매 가이드라인, 통신사-중기 간 국산 솔루션 개발 유도 등 보다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최 교수는 “외산을 선호하는 공공과 민간 네트워크 장비 구매 관행 개선과 함께 네트워크 부문 연구개발(R&D) 체계 혁신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며 “지금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게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수를 기반으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수출도 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지적이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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