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기술 확산이 제한되면 기존 사업자의 이익은 한시적으로 보장될 수 있지만 이용자 편익은 감소한다. 최근 스마트폰 서비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보이스톡, 마이피플, 라인 등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이용자는 망사업자에 의해 자유로운 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대가를 지급하고 데이터를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선택할 이용자의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과거 정부의 선택적 지원을 받아 급성장한 국내 망사업자는 혁신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개방과 공유를 바탕으로 시장을 키우는 스마트시대에도 그들은 여전히 망을 지배해 기존 시장을 유지하려 한다.
망사업자가 특정 서비스의 이용 제한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급격한 트래픽 증가와 이에 따른 이용자 보호다. 하지만 모바일 인터넷전화 등의 서비스가 트래픽을 얼마나 유발하는지, 트래픽 증가로 인해 이용자에게 실제로 어떤 피해가 발생했고 향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의 구체적인 자료는 기업 비밀로 남겨 둔다.
망사업자는 망의 품질 관리를 위해 DPI라는 장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DPI란 심층패킷검사(Deep Packet Inspection)의 줄임말이다. 패킷이란 우리가 주고받는 이메일, 금융거래 내용, 카카오톡 메시지, 유튜브 비디오 등의 내용을 작은 단위로 쪼개어 놓은 데이터다. DPI 기술은 패킷의 주소 부분만을 보는 통상적인 망 관리를 넘어 패킷의 패턴, 필요한 때에는 패킷 내용까지 분석할 수 있다.
DPI란 분산서비스 거부(DDoS) 공격과 같은 심각한 위협이 있거나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할 도구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특정 기업이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 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고객관리 또는 망 관리라는 목적으로 개인 메일이나 카카오톡 내용을 엿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재 DPI 기술은 현실적으로 기술적인 잠금장치가 없이 망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래 인터넷은 가전제품, 자동차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과 연결되는 스마트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서비스 기업과 이용자는 통신망으로 제공되는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언제 차단될지 불안해하며 망사업자의 눈치를 보고 이용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닐까.
인터넷의 주인공은 이용자다. 망 중립성과 트래픽 관리는 인터넷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인데도 이용자 고려와 설득이 부족하다. 통신 내용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는 패킷 감청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망사업자의 `하지 않는다`는 말만 믿을 수 있을까. 악용하지 않으니 편지나 소포 봉투를 열어보게 해달라는 배달원의 요청에 동의할 이용자가 얼마나 될까.
최근 `통신망 관리 기준` 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망사업자와 혁신적 서비스 간의 갈등 해결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 뜻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망사업자의 트래픽 관리 과정에서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터넷 생태계 훼손이라는 부작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자신들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되어 버린 인터넷 망 관리를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기업의 경제 논리에만 맡기게 될까 이용자들이 걱정하고 있다.
강장묵 동국대학교 전자상거래연구소 교수 mookn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