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역산업은 한 국가 내 지역 간 경쟁과 우위 관계를 넘어 `세계 속의 지역산업`이라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지역산업 진흥사업을 필두로 지역산업 육성정책을 본격화했다. 그간 지역산업 육성 신조는 지역 특화에서 지역 균형발전, 현재의 광역화 및 글로벌화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내년에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지역산업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전자신문은 산학연관 지역경제·산업 전문가를 초청해 현 정부 최대 지역산업 정책으로 꼽히는 광역선도산업 육성사업의 지난 1단계 성과를 평가하고 현 2단계 사업의 과제와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가나다 순)
-남기석 전북대 교수
-민창희 한올바이오파마 연구소장
-박광범 메가젠임플란트 대표
-변종립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
-이희훈 광역선도산업지원단협의회장
사회:박희범 전자신문 전국취재팀장
◇사회(박희범 전국취재팀장)=현 정부 지역산업 진흥정책의 핵심이자 최대 규모인 광역선도산업 육성사업(이하 광역사업)이 1단계를 완료하고 2단계에 접어들었다. 1단계 광역사업을 평가해 달라.
◇남기석 전북대 교수=광역사업은 단순 기술개발사업이 아니다. 다양한 세부사업으로 지역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공동의 성과 목표를 달성하는 프로젝트다. 세부사업 특성에 따라 대기업도 참여하지만 전체적으로 중소기업 비중이 60% 이상이고 중견기업을 포함하면 80%를 넘는다.
1단계 광역사업은 권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산학연 협력 환경을 조성했고 그 결과 해외시장 진출과 기업 매출 향상, 지역산업의 전체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특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지역 강소기업의 광역사업 기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부원장=1단계 사업에서 745개 중소·중견기업 등 총 1134개 수행 기관에 7622억원을 투입해 신규 고용 1만9529명, 매출 증대 10조6000억원, 수출 59억8000달러 등 여러 부문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가시적 성과를 달성했다.
광역사업으로 지역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성장동력산업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지역 유망 중소기업에는 중견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 여러 사업이 구매 조건부 등 대·중소기업 협력 아래 진행돼 대기업은 중소기업 제품의 구매처 역할을 수행했다. 대기업 노하우가 중소기업으로 이전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단적으로 삼성테크윈이 주도한 동남권 연료가스패키징 사업은 30여 중소기업을 발굴, 지원하는 성과를 거뒀다.
광역사업은 대기업에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을 포함한 지역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 달라.
◇박광범 메가젠임플란트 대표=전체적으로 지역 기업과 산업 발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한다. 다만 기업별 특성, 지역 산업별 특성을 좀 더 세심하게 고려해 특성화에 초점을 맞춰 추진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사회=정부 지역산업 정책이 광역경제권, 테크노파크, R&D특구, 경제자유구역, 수백개 지역별 특구 등 여러 갈래다. 일반 국민이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인다. 정리한 뒤 개선책까지 들어보자.
◇변종립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테크노파크는 지역산업 육성정책과 개별 기업 기술개발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지역기술 혁신체계의 구심체다.
광역사업은 현 정부가 기존 행정구역을 넘어 경제산업권, 역사문화적 동질성,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해 `광역경제권`이라는 새로운 공간 개념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하겠다.
R&D특구는 지역발전 거점을 확충하고 기존 산업단지 외에 신기술 개발, 성과 확산, 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는데 지역 특구는 230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지역특화 발전사업을 지원하려는 정책이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지역산업 육성정책과 수행 주체 간 역할은 분명히 하고 사업 추진 과정에서 상호연계성을 고려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촉진해 나가고 있다.
지역산업 정책과 수행 주체 간 유기적 협조 체제를 강화해 시너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과제다.
◇남기석=우리나라 지역산업 정책의 시초는 1990년 말 지역산업 진흥사업이라 할 수 있다. 지역산업 정책의 역사를 보면 선진국에 비해 짧은 편이다. 이에 따라서 중복, 난립 등 지역산업 정책을 향한 여러 오해는 정책이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수업료라는 생각도 든다.
지역산업 정책은 결국 지역 발전과 경제 활성화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얼핏 중복돼 보이지만 다 목표가 있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다.
일부 사업 내용에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사업 주체 간 협력과 조정으로 해결해 나가면 된다. 조정이 잘 되면 상호 협력 시너지로 지역산업은 더욱 가속 발전하게 될 것이다.
◇사회=2단계 사업 시작 후 1차연도 절반이 지났다. 지역 전략산업의 고도화 과정을 짚어보고 실행 과정에서의 어려운 점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변종립=1단계의 정량적 평가를 토대로 특히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수치를 지표화해 2단계에 반영했다.
1단계의 12개 미래성장동력산업 외에 고용효과가 높은 권역별 대표 주력산업을 2단계에 포함시켜 총 22개 선도산업을 지원한다. 즉 1단계 때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춰 지역 기업을 지원했지만 전후방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주력 산업 범위를 넓혔고 이를 토대로 광역 단위 산업클러스터를 본격 육성한다.
이를 위해 올해 2850억원을 투입하는 등 2014년까지 1000개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해 2만2000명의 신규 고용창출과 9조원의 매출 증대를 달성할 계획이다.
1단계 사업이 중앙정부 주도였다면 2단계 사업은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협력 구도 아래 추진한다는 점이 의미있는 변화다.
◇이희훈 광역선도산업지원단 협의회장=광역사업의 성과는 사업 종료 이후에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된다. 지난 1단계 3년의 성과를 단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1단계 사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추적관리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사업기간 내 실적보다 종료 이후에도 많은 성과를 창출하도록 독려하는 마케팅 중심 산업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사업 수행 주체의 변화에 따른 연속성 측면에서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특별히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민창희 한올바이오파마 연구소장=글로벌 마켓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사업 기간, 평가 기준 외에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원하는 대로 연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 정부지원 연구비 집행 시기에 사업 연차를 통합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 스스로 연구개발과 사업화까지 모든 부문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비R&D 사업은 이러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다른 사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용한 사업이다. 또 과제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전문성 있는 누군가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 사업 관리 전문인력을 양성하면 지역 기업에 많은 도움이 된다.
◇사회=인력 부문 얘기로 넘어가자. 현재 지역 대학가는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링크사업)이 화두다. 지경부 소관 광역사업단과 교과부 링크사업단은 지난 7월 공동 출범식을 열고 연계협력을 강화해 나간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활동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박광범=인력을 잘 키워놓으면 써먹을 만할 때 나가 버린다. 7~8년만 근무하고 나가주면 신규 및 경력 인력을 고루 갖출 수 있어 순환 배치가 가능한데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타 고용지원사업도 있지만 더 나은 임금과 정주 여건 등을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결국 우수한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사람이 한다는 점에서 우수 인력 확보는 모든 지역 기업의 숙원이다.
◇민창희=지역 기업 종사자는 3년 단위로 이직을 많이 한다. 청년, 대학생 등 취업 대상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 즉 기업과 취업자 간 임금 격차 등 여러 공백을 메워주는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희훈=지역 중소기업에 들어가도 좋다는 분위기, 인식 전환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링크사업단과 조인트 사업을 만들어 다양한 고용창출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
◇석영철=무엇보다 적극성 측면에서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공급자와 수요자 간 수준이 맞아야 한다. 광역사업은 대학과 협력성과 지표를 마련해 이를 평가하는데 링크사업에는 산업계와의 연계협력 성과지표가 없는 것도 문제다. 대기업 협력사인 중소기업이 대기업 로고 또는 브랜드를 함께 활용하는 방안도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지수 점수로 반영해 유도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남기석=인력 수요·공급 불균형은 지역 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하지만 대학 현실과 동떨어진 점이 있다.
지역 거점대학은 대기업 외에 맞춤형 인력양성이 어렵다. 지역대학에 지경부 산학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따라오라 하면 안 먹힌다. 대학 자체에 인력양성 시스템이 있고 지역 중소기업 맞춤 형태의 즉각적 대처도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학과 기업 상황을 보다 면밀히 파악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본다.
◇변종립=지역 기업의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제일 큰 문제는 인력이다.
지역에서 우수인재를 양성해 보급하려면 지역기업과 대학 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지경부와 교과부는 공동으로 `산학협력협의회 운영` `우수 지역 중소·중견기업 정보DB 구축` 등 산학협력네트워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7개 광역경제권에 `산학협력총괄협의회`를 발족했고 산하에 40개 광역사업 프로젝트와 매칭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8월부터 가동 중이다.
링크사업과의 연계 협력 부문에서는 광역사업단이 좀 더 적극적으로 링크사업에 러브콜을 보내도록 유도하겠다. 또 산학협력 점수를 지표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동원해 광역·링크사업 간 협력 노력을 한 단계 높여나갈 필요성도 느낀다.
중장기적으로 지역에서 양성한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 중소기업에 취업해도 좋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두 방향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겠다.
◇사회=새 정부가 들어설 내년에는 지역산업 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것인가. 지역산업 육성 실무 추진주체의 변화, 광역사업의 지속성 또는 변화 가능성 등 광역사업의 향후 방향성을 들려 달라.
◇변종립=다소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지역 정책 강화는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먼저 지역전략산업 종료와 함께 새해 신지역특화사업을 대표 지역사업으로 추진한다. 신지역특화사업은 기존 특화사업을 고용 창출형으로 재편하고 시도 중심 자율기획·집행체제로 추진할 예정이다. 그 대신 정부는 인센티브와 연계한 평가 관리를 강화해 확실히 차등화할 것이다.
초광역사업은 현 광역사업과 통폐합해 전국 단위 연계협력사업 형태로 운영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계속 문제가 돼 온 테크노파크 내 전략산업평가단은 광역선도산업지원단으로 이관, `지역산업평가원`으로 확대 개편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남기석=지역산업 정책은 연속성을 기반으로 안정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관성 있는 지역산업 정책과 관련 사업이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왔다.
최근 신지역산업 발전 전략이 도출된 것과 맞물려 지역 산업별, 기업 수준별 상황을 고려한 정부 지원정책과 사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광역사업과 지역특화사업 간 조화로운 추진을 당부하고 싶다.
◇석영철=우리나라 산업은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 향후 경쟁은 생태계(선단) 경쟁이다. 광역, 신특화사업 등 모두가 산업 생태계를 선단 형태로 구축해 세계와 경쟁해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광역사업은 지역 산업계와 지자체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업이기에 계속 이어나가 지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사회=정부와 추진 기관, 지자체, 지역 산업계가 상호 바꿔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얘기해 달라.
◇이희훈=지역산업 발전을 위해 지역별 협력 노력과 광역사업에서 권역 내 협력 의지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광역선도사업단이 지역에 거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접근성 측면에서도 기업의 긍정적 평가를 많이 들었다.
지역 산업 생태계 구축 주인공은 기업이고 이를 유도하고 지원하는 역할은 지역 기관과 전문가다. 지역 기업과 지역 산업 전문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역발전사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선도산업지원단, 테크노파크, 지역혁신기관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신지역특화사업을 기획하고 있는 단계에 지역에서 육성이 필요한 산업 분야를 최대한 포용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광역사업이 지원하는 산업 분야와 지나치게 중복되거나 중요한 지역산업이 누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민창희=광역사업은 지역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업 자체가 실질적 기업지원 사업이므로 사업 유치를 넘어 이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변종립=그간 지역산업 정책은 외부의 정치적 입김이 일정 정도 작용했다. 또 정치적 변수와 민감하게 연관되는 사례도 있었다. 가능한 한 정치색을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추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역산업 정책에 있어 과거 담당자의 변화 등으로 여러 사업이 임기응변식으로 복잡하게 추진된 점도 있다. 지역 관련 정책은 알기 쉽게 간단명료해야 하고 이 방향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한다.
◇남기석=산업 생태계 지원에서 실질적 예산투입 내역을 보면 다소 부족해 보인다. 기술개발 프로그램도 산업 특성과 기업 수준에 맞춰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중앙사업을 유치하기 어려운 지역 기업을 위한 지원은 계속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리=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