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주도로 개발한 고속 전력선통신(PLC)칩이 국내 시장은 물론이고 해외시장에서마저 무용지물로 전락할 태세다. 특히 저속 PLC칩을 채택하는 해외 AMI프로젝트 진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전 고속 PLC칩은 2009년 ISO 국제표준(IEC12139-1)에 지정됐지만 4년이 지나도록 적용 사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호운용성의 허점을 남긴 국내 50만호 보급이 전부다. 이마저도 감사원으로부터 교체 및 수정을 권고 받았다. 한전 관계자는 “2009년 세계 최초로 ISO 국제표준에 채택됐지만 국내 레퍼런스를 확보하지 못해 해외 적용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2010년 PLC칩의 상호운용성 미비로 사업이 돌연 중단된 후 2년 만에 이를 보완해 사업 재기에 나섰지만 올해 사업도 핵심성능평가(BMT) 장비 조작 의혹으로 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업체들의 국내 레퍼런스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고속 PLC칩 성능도 동급 해외제품과 차이가 있다. 한전과 같은 종류의 고속 PLC칩을 보유한 마벨이나 퀄컴은 이미 시범사업을 통해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미국 마벨 PLC칩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채택돼 미국, 중국, 체코 시범사업에 적용됐다. 퀄컴도 국제전기전자기술협회(IEEE)에 이름을 올려 미국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마벨 관계자는 “해외 고속 PLC칩은 24Mbps 속도의 한전 PLC칩과 달리 200Mbps 이상의 제품이 일반적”이라며 “대부분 저·고속 PLC칩을 포함한 지그비 등 다양한 통신방식을 채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말레이시아 고속 PLC칩 AMI 시범사업에서 마벨의 PLC칩이 선정돼 한전은 고배를 마셨다. 한전PLC 전송속도는 24Mbps로 고속으로 분류되지만 마벨칩(200Mbps)에 비해 저속이라 성능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저속 PLC칩을 채택하는 국가 진출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이달 우즈베키스탄 전력청은 대규모 저속 PLC칩 AMI 구축 사업공고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전·포스코ICT·KT 등이 각각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을 준비 중이지만 입찰 규격에 한전 PLC칩 채택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즈베키스탄 전력청을 방문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에 한전 고속 PLC를 언급했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저속 PLC칩을 적용하려는 분위기”라며 “고속 PLC칩은 유·무선통신 간섭이 많고 저속 PLC칩에 비해 중계역할을 하는 데이터집합장치(DCU)가 더 많이 필요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력청의 설명”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