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제민주화, 자칫 독이 든 사과가 될 수도

18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박근혜 대통령당선인까지도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새해부터는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반가운 소식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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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제민주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악이고, 대기업의 반대편이 선이란 일각의 상황인식은 우려를 자아낸다. 경제민주화는 중요한 화두지만,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는 것은 자칫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현재뿐 아니라 과거·미래 연장선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선진국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나름 잘 견디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 개발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중소기업은 음지에서 묵묵히 고통을 감내했다. 살인적인 가격 압박에 우리 중소기업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대응했다. 대·중소기업이 환상의 팀워크로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냈지만, 그 과실은 대기업이 독점했다. 경제 민주화라는 거대담론이 주목받게 된 배경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초하고, 기존 시장 구도를 바꾸려는 기업만이 이길 수 있다. 코닥·노키아 사례에 비춰보면 최고인 기업도 언제든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 대기업도 경쟁력이 없다면 언제든 퇴출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혁신을 돕는 소중한 파트너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의 혁신도 멈출 수 있다. 무리한 단가인하·재고 부담 떠넘기기·협력사 줄 세우기 등은 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우리 경제 전체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죽기 살기로 역량을 배가해야 한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제품과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의 요구는 무엇이든지 다 충족시킨다는 철학도 필요하다. 부족한 인적자원과 재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은 애플의 축복이 저주로 바뀌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대만산 부품소재 품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본 업체들 경쟁력이 떨어진 탓이다. 애플은 자사 제품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협력사에는 최고의 대우를 하지만, 경쟁력 없는 기업에게는 거침없이 가격 압박을 전개한다.

우리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면서 상당수 협력사도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으로 거듭났다. 일부 기업은 매출뿐 아니라 수익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 역설적으로 대기업의 혹독한 품질·가격 압박이 우리나라 강소기업 탄생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경제 민주화가 잘못 활용되면 자칫 중소기업에 `독이 든 사과`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너무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면 퇴출 돼야 할 기업조차 연명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이 자기 혁신 노력을 멈추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진행돼야 한다.

대기업은 산업 생태계 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처럼 협력사들이 모든 위험과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미래가 없다. 중소 협력사들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대기업이 도와야 한다. 독일·일본처럼 중소기업이 경제 하부구조를 받쳐 줘야 국가 경제 안정성이 확보된다.

대기업이 그동안 우리 경제 성장의 주역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당한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됐고, 병폐가 생긴 것도 분명하다. 대기업은 자사 경쟁력 유지뿐 아니라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미래를 걱정하고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수 싸이의 성공에서 보듯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이의훈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euehunl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