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과거에서 찾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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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8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테크플러스포럼`에 연사로 초대된 황병준 사운드미러코리아 대표는 전기공학도 출신의 음반 엔지니어이자 녹음 예술가다. 황 대표는 올해 2월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 시상식 클래식 음반 부문에서 최고 기술상을 받았다. 그는 이번 테크플러스포럼에서 미국 밀워키 플로렌타인 오페라단 공연 실황, 산울림 데뷔 35주년 기념 김창완 밴드 녹음, 국립국악원 정악단 관악 영산회상 세 가지 음악을 차례로 들려주면서 `자칫 공중으로 흩어져 없어질 소리를 최고의 기술로 실감나게 잡아낸 과정`을 들려줬다.

황 대표는 “국악의 진가는 한국 사람보다 오히려 외국인이 더 잘 알아보는 것 같다”며 “숨겨진 보석 같은 우리 소리를 잘 녹음해서 세계에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밴드와 성가대 활동을 하면서 `좋은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가 주목한 것은 소리의 본질, 바로 `아날로그`였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수단은 `서라운드 슈퍼 오디오 CD`라는 최신 음향 기술이었다. 사람의 귀를 매혹시키는 아날로그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 최신 기술을 빌린 덕분에 녹음 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공연장의 소리를 그대로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진짜` 소리 혹은 아날로그에 깊은 이해와 관심이 없었다면 아마 평범한 전기공학도에 머물렀을지 모를 일이다.

특별연설자로 초대된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명작에 담긴 장인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금관·금팔찌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며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며 “문화유산에 서려 있는 당대 최고의 기술, 현재에도 유효한 미학을 기억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특히 최고 예술가로 추사(완당) 김정희 선생을 꼽았다. 서예 대가의 글씨 베껴 쓰기로 시작했던 김정희 선생은 말년에 제주에 유배되기까지 칠십 평생 동안 벼루 10개 밑창을 구멍 내고 1000자루 붓을 몽당붓으로 만든 끝에 `추사체`를 구현했다. 그는 `입고출신(入古出新:옛것을 고찰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동력을 얻는다)`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장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옛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 기술 발달로 트렌드 변화가 너무 빨라서기도 하지만 옛것을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고 흘러간 역사를 잘 펼쳐 보여주는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기술 분야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임에도 관련 유물은 고사하고 산업발전사 정리도 제대로 돼 있지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55년부터 1998년까지 개발된 유의미한 252개 산업기술사물 가운데 이미 45%가 사라지고 없다. 우리의 지난 산업기술 발전상을 잘 복원해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한 문화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옛것을 정리하고 보관함으로써 향후 우리나라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고 나아가 기술 강국의 꿈을 키우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기술박물관은 생활 유물 중심의 역사박물관과 달리 수출로 성장한 우리 경제 발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산업기술인의 땀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산업기술 선진국인 프랑스는 1794년 기술공예박물관, 영국은 1857년에 런던과학기술박물관, 미국은 1933년에 시카고과학산업박물관, 독일은 1925년에 독일박물관을 건립하는 등 이미 오래 전 산업기술 유물을 수집해 집대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과거는 현재를 있게 한 원동력이자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기술인들이 전후(戰後) 척박한 연구개발(R&D) 환경에서 어떻게 기술을 배웠는지, 어떤 실패를 거쳐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품을 만들었는지 돌아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산업기술 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후손에게 물려주는 작업을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yonggeun21c@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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