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고래싸움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전쟁이 건전한 학술 교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최근 열린 `국제고체회로학술회의(ISSCC) 2013` 기자 간담회에서 다소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와 시선을 끌었다. `반도체 기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학술회의에 인텔을 비롯한 소자 업체들의 참여가 저조한 배경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엉뚱하게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ISSCC 분과위원장을 맡은 유회준 KAIST 교수는 “인텔이 내년 2월 ISSCC에서 공개하기 위해 차세대 중앙처리장치(CPU) 관련 논문을 준비했지만, 제출 직전에 법무팀의 제지로 학회에 논문을 내지 않았다”며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 영향으로 핵심 기술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분위기가 다른 기업들로 확산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세계 기술산업계를 이끄는 두 고래의 싸움으로 건전한 기술 교류라는 새우의 등이 터진 셈이다.

물론 소자업체들의 차세대 기술 공개가 힘들어지는 배경은 이외에도 많다.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급에서 한계를 나타내면서 기술을 안정화시키는 기간이 이전보다 길어지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1년 단위로 차세대 소자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으로 건전한 학술 교류까지 위축되는 것은 분명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해 소자는 물론이고 부품소재 및 장비 업체들과 학계를 망라한 포괄적인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높아진 특허 장벽으로 산학연 간 건전한 토론과 공동 연구가 위축될지 걱정되는 이유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걱정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한탄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양종석 소재부품산업부 차장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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