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어드밴스드 디자이너 신용욱
지난 14일 국내 출시된 프랑스 푸조 브랜드의 소형차 `208`은 독특한 계기판 및 운전대 배치를 갖고 있다. 일반적인 승용차는 운전대의 안쪽 너머로 계기판을 보게 되는 데, 208의 계기판은 운전대 위쪽 시야 범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운전자가 앞을 봤을 때 앞 유리 바로 아래에 계기판이 위치하므로, 시선의 이동이 한결 적다. 사람이 한 곳을 집중해서 보면 시야 범위가 좁아지게 되는데, 208의 경우에는 계기판을 확인하는 동안에도 전방 상황을 알 수 있어 안전 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러한 원리를 반영한 시도는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계기판을 위로 올리되 운전자 앞이 아닌 실내 중앙에 배치하거나, 기존 계기판 위에 보조 계기판 형식으로 덧붙이는 형태를 취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운전대가 계기판을 가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8은 아주 작은 운전대로 이 문제를 풀었다. 208의 운전대는 이전 모델인 `207`보다 지름이 6㎝나 줄었다. 소형차이긴 하지만 대중적인 양산 차에서 이렇게 작은 직경의 운전대를 채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관철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한국계 디자이너 신용욱 씨다. 프랑스의 푸조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신용욱 씨는 어드밴스드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다. 향후 6~7년을 미리 내다보고 장차 내놓을 제품들의 디자인 근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푸조 208에 적용된 혁신적인 계기판 및 운전대 배치는 2006년, 그가 푸조의 미래 제품에 적용될 `휴먼 머신 인터페이스(Human Machine Interface)`를 디자인 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고안한 것이다.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제네바 모터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디자이너 동료들과 함께 승용차를 운전해서 가고 있었는데, 눈길이라 속도를 낮춰야 했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앞 유리 너머와 계기판을 번갈아 보며 운전해야 했어요. 바로 이때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죠.” 상관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설계도와 시제품 제작을 통해 타당성을 검토하도록 했다.
문제는 역시 운전대의 크기였다.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작은 운전대를 쓰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신용욱 씨는 10년 동안 소유해온 작고 납작한 클래식 스포츠카의 운전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운전대가 오히려 편리하며 스포티한 주행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확신했다. 물론 이를 입증하는 데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결국 여러 시제품을 만들어 다양한 신체 조건의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고,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본인의 제안에 자신을 갖고 있었던 신용욱 씨도, 막상 208에 적용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반신반의 했다고 한다. 208급의 소형차는 푸조 내에서도 판매 비중이 아주 높을 뿐 아니라, 요즘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푸조가 부활의 신호탄으로 삼고 있는 차량이 바로 208일 정도로 중요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험적인 시도가 자칫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까 염려스러웠다는 것이다. 다행히, 푸조 208은 유럽에서 출시된 이후 지금까지 4개월째 프랑스 판매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유럽 동급 시장에서 2위, 유럽 전체 차종 중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인 첫 해를 보내고 있다. 신용욱 씨는 아방가르드한 문화를 갖고 있는 푸조이기에 이런 디자인이 시도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