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15>5년의 법칙 `정부조직개편`

5년의 법칙이 다시 등장했다.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측은 5년 집권을 위한 정책과 조직을 재단(裁斷)했다. 이 일은 어느 정권이건 예외가 없었다. 조직개편은 국정 수행을 위한 도구였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이기도 했다. 행정부는 5년 정권교체기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존폐를 결정짓는 심사대 위에 올라서야 했다. 1994년 12월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한 정보통신부도 그 대상이었다.

1998년 1월 5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김중권 비서실장(새천년민주당 대표 역임, 현 변호사)은 이날 기자들에게 “정부 조직개편을 위한 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위원장에는 언론인 출신인 박권상(동아일보 주필, KBS사장 역임, 현 명지대 석좌교수)씨를 내정했다.

행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관가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장 위원들의 면면에 관심이 집중됐다.

심의위원회에서 실무를 총괄했던 이강래 실행위원(청와대 정무수석, 민주당 원내대표 역임)의 회고.

“위원장 인선을 놓고 당선자 측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박동서 행정쇄신위원장을 모시려고 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는 데 지난 정부에서 일한 분을 모시는 게 보기 좋지 않다는 반론이 나왔어요. 박 위원장은 김영삼 정부시절 행정쇄신위원장으로 일한 분입니다. 내부 논의 끝에 위원장은 박권상 전 동아일보 주필을, 부위원장은 이세중 변호사(대한변협회장 역임, 현 환경재단 이사장)를 각각 모셨습니다.”

1월 6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

박권상 정부조직개편 심의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조직 개편방향에 대해 밝혔다. 그는 위원장 내정 시기에 대해 “지난해 말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위원장직 권유를 받고 고심 끝에 수락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개편 방향에 대해 “21세기를 앞두고 특히 IMF체제에서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시스템을 만드는데 초점을 둘 것이고 늦어도 이달 말이나 2월 초까지 개편안을 확정지을 방침”이라며 “앞으로 2주 안에 시안을 만들어 의견수렴 과정을 거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개편안은 정부행정쇄신위와 총무처, 행정학회 등에서 안을 넘겨받아 가장 현실적인 안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튿날인 1월 7일 김대중 당선자는 박권상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13명의 심의위원(고문 2명 포함)과 김광웅 서울대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대통령직속 중앙인사위원장 역임, 현 명지전문대 총장)를 위원장으로 한 실행위원 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심의위 고문은 행정학의 대가인 박동서 행정쇄신위원장(작고)과 이문영 경기대 대학원장(함석헌 기념 사업회 이사장 역임)이 맡았다. 위원은 김광웅 서울대 교수, 김철수 서울대 교수(현 명예교수), 박상천 국민회의 원내총무(법무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박범진 국민신당 사무총장(현 미래정책연구소 이사장), 송자 명지대 총장(교육부 장관 역임, 현 명지학원 이사장), 이세중 변호사, 이연택 전 총무처 장관(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역임), 임동원 총재특보(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역임), 장명수 한국일보 주필(한국일보 사장 역임, 현 이화학당 이사장), 정상천 자민련 부총재(서울특별시장 역임, 현 변호사) 등이었다.

실행위원은 김범일 총무처 조직국장(현 대구직할시장), 김병섭 서울대 교수(한국행정학회장 역임), 김인수 고려대 교수, 안문석 고려대 교수(현 명예교수), 이강래 총재특보, 최수병 총재특보(작고, 보사부 차관 역임), 이계식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작고, 제주 부지사, 부산발전연구원장 역임), 정정목 청주대 교수 등이었다.

김대중 당선자는 이날 낮 국회귀빈식당에서 첫 회의를 열고 “21세기에 적합한 국가차원의 현실적인 개편안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정부조직개편 심의작업은 속도를 냈다. 김광웅 실행위원장 주도로 행정쇄신위원회가 연구해온 정부조직개편안과 한국개발원, 행정학회에서 제출한 개편안을 토대로 시안 작성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은 1월 13일 3개 시안을 토대로 실행위원회를 열어 1차 시안내용을 논의한 후 15일 2개 시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동요와 조직논리가 작용했다. 이에 김대중 당선자가 조직개편 전면에 나섰다. 김 당선자는 청와대 비서실 직제 개편안을 내놓고 반발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1월 13일 오후.

김대중 당선자는 이날 박지원 대변인을 통해 김영삼 정부 청와대 11개인 수석비서관을 6개로 대폭 줄인 청와대비서실 직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는 IMF체제 아래서 청와대가 고통분담을 앞장서서 실천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비서관도 51명에서 33명으로 줄이고 수석비서관의 직급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낮췄다. 차기 정부 청와대 비서실은 과거와 비교해 위상이나 직급이 낮아졌다. 청와대가 감량조직의 고통을 솔선수범하겠다며 선수(先手)를 치고 나선 것이다. 김 당선자의 정치력이었다.

1월 16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주최로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토론시작 한 시간 전부터 각 부처 공무원과 기자 등 1000여명이 대거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공청회는 박권상 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김광웅 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이 정부조직개편시안 발표, 토론 순으로 진행했다.

김광웅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조직개편의 목표는 작지만 강하고 효율적인 정부, 봉사자로서의 정부,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정부, 기술중심주의와 정보화에 대응하는 과학화·정보화 정부 구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따라 조직개편의 기본원칙으로 △유사기능 통폐합과 기능 재정립 △행정의 종합성과 전략성·기동성 제고 △규제완화와 정책의 시장원리 및 경영 효율성 개념 도입 △수요자 중심의 조직체계 △중앙기능의 지방이양과 민영화 민간위탁 확대 △통일대비 체제 구축 등에 두었다고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이런 기본원칙 아래 전자정부 구현과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인사혁신을 위한 조직개편안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 시안에 정보통신부 개편안도 포함됐다.

두 가지 방안이었다. 제1안은 현행 정보통신부 체제를 유지하되 우정업무의 공사화 또는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었다. 제2안은 `더 작은 정부안`으로 정보통신부를 통신산업부 혹은 중소기업청, 과학기술처의 산업기술과 통합해 `산업기술부`로 개편한다는 방안이었다. 대신 우정업무는 공사화 또는 민영화하고 방송과 전파관리 기능을 독립된 `위원회`를 신설해 이관키로 했다.

시안발표가 끝나자 구본호 울산대 총장과 김용정 동아일보 논설위원, 노진귀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박윤흔 대구대 총장, 송보경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 신대균 행정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유근일 조선일보 논설주간, 조석준 서울대 명예교수,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 최동규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이 토론자로 나서 종합토론을 했다.

정보통신부 개편안은 논란 끝에 1안으로 확정됐다. 전자정부 구현을 지향하는 차기 정부가 정보통신부를 폐지한다는 건 국정지표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실제 1월 12일 열린 21세기 정보화 사회 준비를 위한 공청회에서 김효석 중앙대 교수(민주당 원내대표 역임)는 “정보화 추진의 구심점을 없애는 일이므로 정보통신부는 독립부처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안에 대해 행정쇄신위원회도 반대했다.

당시 행정쇄신위원으로 활동했던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의 기억.

“차기 정부에서 조직개편 시안을 만들어 왔는데 보니까 정보통신부를 없애는 것으로 돼 있어요. 어이도 없고 화가 치밀어 K모 실행위원에게 `정보화 추진을 위해 정보통신부를 출범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금세 통합하는 게 말이 되느냐, 조직개편이 애들 장난하는 것이냐`며 호통을 쳤어요. 당시 박동서 위원장도 정통부 폐지 개편안에 반대했어요. 저는 `차기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어요. 결국 내무부와 총무처를 행정자치부로 통합했습니다.”

이강래 실행위원의 증언.

“당시 정보통신부를 산업자원부로 넘기려 했지만 보류됐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그런 조치가 너무 빠르다고 판단했습니다.”

인명직 행정쇄신위윈(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역임, 현 갈릴리교회 목사)의 증언.

“검찰의 교정국장을 모두 검사들이 차지했습니다. 이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 교정국장은 교정직이 맡도록 개편했어요. 검사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모릅니다.”

1월 26일.

정부조직개편 심의위는 이날 대통령직속으로 장관급의 기획예산처와 중앙인사위원회를 설치하고 7개 부처를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개위는 △행정의 종합성, 전략성, 기동성의 제고 △유사기능의 통폐합과 기능의 재정립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경제지원체제로의 전환 △정책수행에 있어서 시장원리와 경영효율성 개념 도입 △고객 지향적, 수요자 중심적 조직체계 설정 △중앙기능의 지방이양 및 적극적인 민영화, 민간위탁 △환경, 사회복지분야의 확충과 통일대비체제 구축 등 7가지 원칙에 따라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은 현재의 21명에서 16명으로 장관급은 33명에서 24명으로 차관급은 67명에서 57명으로 각각 줄었다.

이에 앞서 심의위는 김대중 당선자에게 이 같은 내용의 정부조직 최종안을 보고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월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고 정부조직법 개정법률 공포 안을 통과시켰다.

2월 28일.

박동서 위원장은 인수위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조직 개편 최종안과 중앙부터 공무원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5년의 법칙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2차 정부조직개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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