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 기르던 화초 줄기가 불의의 사고로 중간에 끊어져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잘려나간 줄기의 끝 부분은 상처가 아물면서 까맣게 변색되고 줄기의 중간 부분에서 새순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거기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잎사귀 속에 감춰진 새순에는 언제나 줄기가 성장하려는 욕망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런 성장 욕망과 생존 본능이 불의의 사고로 잘렸을 때 과연 줄기에는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줄기는 `절망`이었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절치부심 끝에 `희망`의 가지를 뻗기 시작한 것이다. 가다가 `줄기`가 끊어져도 `줄기`에서 다시 `줄기차게` `가지`를 뻗다 보면 그 `가지`에서 `여러 가지` 희망을 낚을 수 있다. `줄기`는 성장하다가 잘려 나갔다고 `절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줄기는 거기서 다시 반전과 재도전을 거듭, 마침내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운다. 줄기가 끊어졌다고 `가지`마저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지`에는 아직도 가지각색의 `여러 가지` 희망이 남아 있다. `가지`가 `여러 가지`인 것은 `한 가지`밖에 없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다양한 `가지`가 가지각색 꿈을 꾸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처럼 꺾인 줄기의 끝 지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꿀 때 끝의 머리, 즉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담긴 머리를 생각할 수 있다. 끝에서 머리, 즉 시작을 생각하는 마음이 `끄트머리`에 담겨 있다. 막다른 끝에서는 별 다른 도리가 없다. 주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목숨 걸고 승부수를 던지거나 필살기를 꺼내 화룡점정의 끝마무리를 해야 한다.
줄기의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가지`는 시작될 수 있다. `줄기차게` `줄기`에서 `여러 가지`를 뻗다 보면 `가지`도 `줄기`가 될 수 있다는 신념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분명 `가지`는 줄기가 아니지만 `가지`도 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경이로운 기적을 만들고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 기적과 신화는 모두 경이롭다. 경이로운 기적과 신화는 평범한 상식에서 출발하지만, 식상함에 통렬한 문제를 제기하는 몰상식한 발상과 시도를 즐긴다는 점은 같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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