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힐링` 속의 과학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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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 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들의 주제를 보면 사람의 고민과 욕구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른 책 대부분이 힐링이나 치유를 다루는 것을 보면 힐링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고통을 고치는 것이라면 심리적 치료(治療)라는 개념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구태여 힐링(healing)이나 치유(治癒)라는 표현에 더 열광하는 것일까.

치료는 병의 증상을 없애기 위해 의사가 무엇인가 개입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치유는 발병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시간을 두고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힐링에서 `heal`의 어원은 `holy`와 `whole` 즉 `신성`과 `전체`에서 왔다. 결국 치유를 거쳐 인간이 완전하고 신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치료가 아닌 치유는 정신적 외상과 같은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 개념이다. 그런데 최근 힐링은 현대인의 일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의 대명사로 쓰이며 사업 수단으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 여행, 음식, 공연, 아파트, 심지어 금융상품 펀드에도 힐링이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붙으니 말이다. 힐링의 상업화가 “너도 아픈 거야”라고 뭇사람을 부추기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일로 잠시 혹은 상당 기간 동안 좌절하고 심적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더 성숙하고 승화된 삶을 산다. 예술가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수한 실패와 좌절로 심적 고통을 겪는다. 만일 그들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섰다면 불후의 명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죄와 벌`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아홉 살 때부터 측두엽 뇌전증을 앓아 평생 발작으로 고통 받았지만 인고의 세월 속에서 세상을 남들과는 다르게 보는 시각이 창조성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세계적인 명상 치유자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인 프랑스의 마티외 리카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린다고 한다. 미국 위스콘신대의 한 연구소가 기능성 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해 그의 뇌를 촬영·분석해 보니, 긍정적 감정을 관장하는 전전두피질에서 이제껏 조사한 사람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세포유전공학자였던 그가 20대에 출가해 평생 티베트에서 수련한 결과일 것이다.

결국 치유란 오랜 수련 과정을 거쳐 얻게 되는 자기 내면의 완성이다. 많은 사람이 `힐링`이라는 트렌드에 편승해 마땅히 견뎌내야 할 인내와 수련의 미덕마저 도외시할까 걱정된다. 용기와 투지를 강조하는 것이 비인간적으로 비친다면 이는 자칫 사회적으로 집단 무기력증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힐링이 패자부활로 이어지는 디딤돌 구실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설가 박범신이 칼럼에서 “힐링은 단지 쉬는 것이 아니며 바쁜 것, 빠른 것이라고 꼭 나쁜 것도 아니다”고 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공감과 위로 같은 인간적 터치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아이폰의 탄생은 스티브 잡스의 인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탄생한 마케팅 용어에 현혹돼 과도한 신비화와 비과학적 처방으로 포장된 힐링 상품에 빠져들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영역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요즘 많은 청소년이 쉽게 좌절하고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이 즈음 청소년을 대상으로 `과학과 힐링`을 주제로 하는 과학토크가 열린다니 기대가 크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hrkang@ko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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