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20` `비전 2030` 어느 플래카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이제 이 낱말에는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IT가 포함된다. 최근 몇 년간 국내 그룹의 가장 큰 공통적 변화는 그룹 차원 경영 비전 달성 수단으로 IT 전략을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계열사별 IT 전략이 비즈니스 성장과 그룹 명운에 직결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과거에는 일부 그룹사가 관리 단순화와 비용절감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표준화를 시도하는 데 그쳤다. 강제성도 없었다.
이젠 하드웨어(HW)부터 소프트웨어(SW)에 이르는 데이터센터 전략을 비롯해 클라우드·모바일 등 신기술을 아우르는 그룹별 IT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 정보화 시장 지형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다. 경영에 침투한 `그룹 IT 거버넌스`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중견그룹 `IT 컨트롤타워`…IT가 곧 경영
역할은 대동소이하지만 형식에 정답은 없다. IT 컨트롤타워 형태도 다르고 소속 조직도 제각각이다. 그룹 조직, 지주사 조직에 속하거나 주력 계열사 IT 조직이 주관하는 식이다.
삼성·두산·현대중공업·효성그룹 등은 업종은 다르지만 경영혁신 및 IT 전략을 총괄하는 그룹 차원 조직이 있다. 최근 한화그룹도 그룹 차원 `IT 전략센터` 조직을 신설했다. 웅진그룹은 지주사인 웅진홀딩스 CIO 조직이 그룹 전체 IT 기획과 개발을 총괄한다. 한화 관계자는 “신설된 센터는 그룹 차원 IT 최적화 진단과 전략 제시 등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주사나 IT서비스 기업이 아닌 특정 계열사가 전체 그룹 IT 전략을 총괄하는 사례도 있다. KT가 그룹 전략을 총괄하는 KT그룹, 최근 한라건설 내 그룹 IT 조직인 `IT사업본부`를 설립한 한라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 정기 협의체가 의사결정 기관 역할을 하지만 협의체 의장이 주기적으로 바뀐다. LG그룹처럼 최고정보책임자(CIO) 협의체와 사례 공유로 자율적 IT 투자 효율화를 중시하는 사례도 있다.
IT 컨트롤타워의 공통된 역할은 주로 △공통 애플리케이션 전략 △데이터센터 및 HW 전략 △모바일·클라우드 등 신기술 도입 전략 등을 수립하는 데 따르는 의사결정이 핵심이다. 기존 IT서비스 기업이 해왔던 동시 다발적 수행보다 한 단계 앞선 전략적 기획자 역할을 한다.
한 계열사 사례를 타 계열사에 전파하거나 기술 공유에 유리하고 상향 평준화를 위한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 등이 그룹 IT 컨트롤타워의 대표적 순기능이다. 계열사별 중복 투자를 막으면서 그룹 단위 구매 파워를 발휘해 IT 업체와 가격 협상에 유리하다는 점, 계열사별 시스템이 같아지면서 관리 포인트가 단순해지고 통합으로 유지보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 등도 주요 효과다. 신기술 도입 시 실패 가능성도 줄여준다.
역기능도 있다. 계열사별 비즈니스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고 때로는 특수 애플리케이션 도입도 제한된다. 계열사별 IT 투자가 비자율적으로 이뤄지면서 그룹 공통 의사결정을 기다리다 지연되기도 한다. 계열사별로 일찍 투자된 시스템에 재투자가 소모되거나 때론 과거 전문 인력이 필요 없어지는 문제에 부딪히는 때도 있다.
◇SW부터 HW까지…클라우드부터 모바일까지
그룹에 IT 컨트롤타워가 있으면 그룹 차원의 전사자원관리(ERP) 및 모바일 오피스 전략으로 공통 시스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한다. 삼성·SK·롯데·현대기아차 등에 이어 두산·한화·동원그룹 등이 최근 SAP ERP 시스템 기반 표준화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동원그룹은 ERP뿐만 아니라 제품수명주기관리(PLM)·공급망관리(SCM) 등 그룹 단위 공통 애플리케이션 템플릿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포스코·CJ·효성·두산그룹 등도 애플리케이션뿐만 아니라 모바일·가상화 등 그룹차원 신기술 표준화 전략을 강화하는 사례다.
그룹별 애플리케이션 전략은 그룹의 IT서비스 기업 혹은 주력 계열사 서비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KT그룹은 KT에 이어 KT네트웍스가 이달 KT 클라우드 인프라 기반 ERP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가동하는 등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는 KT 서비스가 그룹 내에 확산되는 추세다.
SW에 이어 HW에도 그룹 차원 전략은 확대 추세다. 그룹 차원 서버 가상화는 대부분 그룹이 완료했다. 이어 IT서비스 업체가 HW를 총괄 관리하면서 계열사별로 사용료를 내고 쓰도록 하는 그룹 차원 서버 클라우드가 삼성·포스코·동부 등에 확대 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별도 소유해야 하는 HW 자원을 최소화하면서 비용절감이 가능하고 HW 투자비를 줄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간 삼성SDS에 순차적으로 HW를 이관해 온 삼성그룹은 이미 전 계열사가 HW를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삼성·LG·한화·CJ 등 그룹 대부분은 하나의 통합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반기 파주에 새 데이터센터를 가동한 현대차그룹에 이어 이달 데이터센터를 가동한 포스코그룹, 또 데이터센터를 물색 중인 현대중공업·한라그룹 등이 HW 물리적 통합을 통한 IT 효율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 `정보보안`이 핵심 사안으로 떠오르면서 그룹 IT 거버넌스에 있어 보안 전략도 별도로 수립하고 있다. 롯데·신세계그룹 등 개인정보에 민감한 유통 중심 그룹은 그룹 전 계열사의 통합 보안을 담당하는 별도 그룹 차원 보안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룹 IT 전략 추이와 최근 사례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