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주부 K씨는 며칠 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TV·냉장고 등 노후 가전제품을 한꺼번에 교체하면서 친환경·고효율 표시가 붙어있는 제품을 선택했더니 매달 눈에 띄게 전기요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높은 가격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절약될 전기요금을 생각하니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환경 제품으로 주세요”
과거 친환경 제품은 `비싸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거나 고효율을 위한 첨단기술을 결합한 제품은 실제 판매가격이 높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기 일쑤였다. “의도는 좋은데 직접 구입하기는 좀…”이라는 반응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지면서 에코디자인을 적용한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국가녹색구매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약 82%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제품 구매를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역시 설문조사를 통해 “제품 구매 시 친환경성을 중요 요소로 고려한다”고 대답한 소비자가 53%에 달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그린카드 발급이 300만장을 돌파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환경 친화 소비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을 일컬어 그린컨슈머 또는 에코컨슈머라고 부른다. 이들은 환경을 고려하는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선호한다. 단지 개인의 욕구나 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공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친환경 소비 자체를 상징적 문화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린컨슈머는 일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제품 구입 시 욕구인식→관련 정보 탐색→대안 평가→구매 결정→구매 후 행동 등 5단계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관련 정보 탐색 시 일반 소비자는 가격과 제품의 특성을 살피는 반면 그린컨슈머는 생산·소비에 대한 환경효과를 생각한다. 대안 평가 시 일반 소비자는 개인적인 편익을 생각하지만 그린컨슈머는 사회·환경적 비용을 함께 고려한다.
이건모 아주대학교 교수는 “친환경 제품은 환경은 물론 우리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이런 제품이라면 비싸더라도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트렌드의 변화”라고 말했다.
◇“친환경 제품을 팝니다”
친환경 소비문화의 정착에 발맞춰 기업들은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고 제품 환경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그린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접목할 수 있는 환경 이슈를 크게 기후변화와 자원고갈로 나눌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덜 미치고 자원을 적게 사용하는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린마케팅 중 하나가 `탄소성적표지`다. 탄소성적표지는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발생량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으로 환산해 라벨 형태로 제품에 붙인 것이다. 1단계 표지가 탄소배출량만을 표시했다면, 2단계는 감축량을 보여준다.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고자 해도 정보가 부족했던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어 탄소성적표지 인증 제품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탄소성적표지 인증을 넘어 대대적인 친환경 캠페인을 진행하거나 녹색경영을 선언하는 한편, 고효율·친환경 제품을 출시해 그린컨슈머에게 직접 어필하는 사례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는 LG와 삼성전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LG그룹은 올해 신성장동력으로 `그린 신사업`을 선포했다. 앞으로 △에너지 △전기자동차 부품 △리빙에코 △헬스케어 등 4개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2020년 그룹 전체 매출의 15%를 그린비즈니스에서 달성한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09년 녹색경영을 선포하고 `친환경 혁신활동을 통한 새로운 가치창출`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사업장 온실가스 원단위 배출량을 2008년 대비 48% 줄였으며, 제품 부문에서는 평균 에너지효율을 31.4% 높였다.
애플은 출시하는 제품마다 △기후변화 △제한물질 △에너지효율 △재질효율 △재활용 등 5가지 환경이슈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해 소비자에게 제품의 환경성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필립스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가 간단하고 쉽다는 사실을 알리는 `심플스위치 캠페인`을 진행했다.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절약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으며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됐다.
김기정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환경에너지팀장은 “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전개되는 기업의 친환경 마케팅 전략은 환경요소를 고려한 제품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결국 고객의 요구와 마케팅의 접점에서 에코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제품의 출시 빈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류성남 LG전자 환경전략실장
“기업은 녹색제품 개발을 통해 소비자들이 `그린소비`를 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합니다.”
류성남 LG전자 환경전략실장은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업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녹색제품을 개발해 친환경 소비를 유도하고 소비자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린마케팅은 사회에 기여함은 물론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LG전자는 그린마케팅을 넘어 `그린경영`을 통해 세계적인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청소년 환경 교육의 일환으로 `2012 팀 에너지 스타 챌린지` 공모전을 진행해 뉴욕 타임스퀘어 LED 전광판에 수상작을 발표하는 등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그린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 환경전략실은 환경 이슈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2008년 조직한 전담 부서다. 기업 활동 전반에서 환경 부하를 줄이기 위해 친환경 제품 개발, 생산, 자원 재사용 등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류 실장은 “LG전자의 그린경영은 단순한 환경보호 운동의 차원이 아닌, 기업의 환경책임과 리더십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며 “소비자의 관심과 요구를 반영한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의 성과도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미국 환경 보호청이 실시한 `에너지 스타 최고 에너지효율` 프로그램에서 TV 8종, 세탁기 3종, 냉장고 2종이 최고 에너지 효율 제품으로 선정됐다. 지난 6월에는 `그린 스마트 스토어 에너지 절감 시스템`이 에너지 위너상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류 실장은 “그린경영은 사내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개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감시단의 운영”이라며 “10여명으로 구성된 에너지감시단은 창원 공장 내부를 돌아다니며 손실되는 에너지를 직접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앞으로 녹색과 혁신을 결합한 `그리노베이션(Greenovation) 컴퍼니`로 거듭난다는 목표다. 보다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소비자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소박스/늘어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업의 그린마케팅 노력은 단발적이고 개별적인 경영요소가 아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측면으로 통합돼 그룹경영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물리적 성과뿐 아니라 도덕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인 지속가능보고서의 발간 증가 추이는 기업이 느끼는 그린마케팅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KPMG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 포춘 선정 250개 기업의 95%, 34개국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64%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지속가능보고서와 같은 의미의 기업의사회적책임(CSR) 보고서 발행 역시 국내외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좋은기업센터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CSR 보고서 발행은 2003년 총 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총 130건(누적)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LG전자, KT, 포스코에너지,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호남석유화학, SK케미칼 등 다양한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했다.
대우건설은 미래성장·녹색성장·동반성장을 테마로, KT는 이석채 회장이 추진하는 올레경영 2.0을 반영했다. LG전자 역시 수처리 부문에 향후 10년간 5000억원 이상을 집중 투자해 2020년까지 글로벌 선두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담은 `2011~2012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국내 기업의 CSR 보고서 발행현황(자료=좋은기업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