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특허 상당수가 자금 부족으로 해외엔 출원조차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전문가는 국내 등록 특허 가운데 해외 등록 비중이 2~5%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어렵게 개발하고도 정작 수익을 외국 기업이 챙길 수 있다는 우려다. 특허 시장에 심각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 있는 셈이다.
15일 관련 기관·업계에 따르면 대학과 연구소 개발 특허 상당수가 최소 100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해외 특허 출원비를 마련하지 못해 출원조차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어렵사리 출원해도 외국 특허청으로부터 의견제출 통지서와 몇 차례 보정요구를 받는 과정에서 등록을 포기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대개 외국 특허청에 내는 비용 이상을 대리인(변호사)에게 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부담스럽다.
해외에 특허를 등록해도 5~10년 사이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대학과 출연연에서 5년 경과 시점까지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후에는 아예 발명가에게 넘긴다. 자금이 없으면 포기로 이어진다.
통계로도 확인됐다. 전자신문이 R&D특허등록센터에 의뢰해 2010년 기준 상위 10개 대학의 국내외 출원과 등록건수를 비교한 결과, 출원 건수는 국내 대비 해외가 4분의 1에 그쳤다. 해외 등록건수도 국내의 6분의 1에 머물렀다. 출원 기준으로 4건중 1건, 등록 기준으로 6건 중 1건만 해외에 올라가는 셈이다.
카이스트(KAIST)의 국내 특허 출원과 등록건수가 각각 1047건과 450건이었으나 해외는 212건과 83건으로 내려갔다. 서울대도 국내가 772건(출원)과 369건(등록)이었으나 해외는 각각 245건과 77건으로 줄었다. 고려대는 국내 출원건수와 등록건수가 각각 573건과 328건이었으나 해외는 84건과 22건으로 크게 하락했다.
이 조차도 허수가 많다는 지적이다. 민승욱 아이피큐브파트너스 대표는 “대학이나 출연연 100건의 특허 가운데 해외 출원은 두세 건에서 많아야 너댓 건에 불과하다”며 “몇 개 특허가 미국·일본·중국 등 여러 나라에 출원돼 많아 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특허 비용 지출 명세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해외 출원·관리비(연차료)가 더 소요됨에도 대학 특허 지출비용은 국내가 해외를 크게 앞선다. 128개 대학 2010년 실적 기준으로 국내 특허 출원·중간·등록·유지비용은 187억원인 가운데 해외는 88억2300만원으로 크게 내려갔다.
전문가는 연구개발(R&D) 성과물인 특허가 제대로 수익으로 이어지기 위해 해외 특허 등록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김길해 피앤아이비 이사는 “국가 R&D 예산은 대개 수요처가 정해졌다. 출원 후에도 1~2년 동안 상당한 비용을 내야 하는 해외 특허 등록까지 생각하지 못한다”며 “민간이 자발적으로 투자하도록 정부가 나서서 시스템을 갖추거나 특허펀드를 결성해 우수 특허가 해외에 등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지식재산전문회사(NPE)는 미국에만 600여개가 활동하지만 우리나라에 서너 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기업이 아이디어·기술 사업화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자금부족으로 상용화에 실패하는 상황을 말한다. 정부 정책자금이 창업과 연구개발(R&D)에 집중돼 있고 제품 양상과 홍보·마케팅을 등한시해서 나왔다. 개발에 모든 예산을 투입한 상태에서 추가 자금 확보에 나서지만 이렇다 할 실적이 없어 조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허도 국내에 등록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해외에는 비용 부담으로 등록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료:R&D특허센터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