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싸이 노래 19금 풀기 전에 할 일, 여성부를...

여가부의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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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극인의 `상춘곡`으로 지금 노래를 만들면 십중팔구 청소년유해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강산의 봄을 아름답게 그려낸 조선시대 최초의 가사가 청소년에게 해를 끼친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 내용과 현행 콘텐츠 산업 규제를 모두 고려하면 개연성이 충분하다.

상춘곡 말미에는 `얼운은 막대 집고, 아(해난) 술을 메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잔 시어 부어 들고(중략)…무릉이 갓갑도다`라는 표현도 있다. 현대어로 대강 바꾸면 `아이가 들고 온 술을 냇가에서 마시니 기분이 매우 좋다`라는 의미다

옛 정취가 담긴 문학 작품이지만 청소년유해물을 지정하는 여성가족부가 보면 펄쩍 뛸 내용이다. 술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하니 틀림없는 음주 문화 조장이다. 게다가 아이에게 술독을 지게 만들었으니 청소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이라는 박목월의 시 `나그네`도 노래로 만들어봤자 온 나라를 술판으로 만들었다는 19금 딱지가 붙을 게 뻔하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라며 대놓고 음주를 권장한 정철의 시조 `장진주사`는 아예 노랫말로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성가족부는 가사에 `술`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앞뒤 의미를 따지지 않고 청소년유해물로 분류한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시작으로 10㎝의 `아메리카노`, 바이브의 `술이야` 등 유명 가요에 유해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청소년에게 맞지 않는 단어를 일단 차단하고 보자는 여성가족부의 콘텐츠 규제 정책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다. 인터넷 덕분에 국경과 세대를 넘어 정보가 유통되는 21세기에 제 눈만 가리면 된다고 믿는 시대착오 발상이다. 청소년을 `지도 편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이다.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에 음반제작사는 여성가족부를 상대로 네 건의 행정소송을 냈다. 청소년유해물 지정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모두 여성가족부가 패소했다.

실소를 자아내는 여성가족부 방침이 또 나왔다. 싸이 `강남스타일`이 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자 또 다른 노래 `라잇나우`에 씌운 청소년유해물 지정 해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발표다. 처음 지정할 때부터 삐뚤어진 잣대로 비판을 받았다. 이젠 원칙마저 없다. `엿장수 맘대로`라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한국 게임의 규제도 모두 풀어야 하건만 되레 거꾸로 간다.

싸이 노래에 씌워진 19금의 굴레를 풀기 전에 왜 이런 모순이 생겼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이 기회에 콘텐츠 규제 기준을 시대와 국격에 맞게 바꿔야 한다. 차단 일변도가 아니라 유해성의 실체와 악영향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설득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콘텐츠는 산업 이전에 국민 정서,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 문화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동준 콘텐츠산업부장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