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디자인 `선택이 아닌 필수`
기후변화를 고민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이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주변을 살펴보면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친환경 제품이 많이 있다. 옷걸이로 사용할 수 있는 택배상자, 무세제 세탁기, 유산균 김치냉장고, 태양광 계산기 등 친환경 디자인으로 만든 아이디어 제품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사업성이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경제 전반을 지탱한다. 국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과 미국은 에너지와 관련 있는 모든 제품에 친환경 디자인 수행을 강제하는 법률을 발표했다. 이에 부합하는 제품은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친환경 디자인을 산업의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장을 주도하는 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친환경 디자인이 바꿔가는 산업과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10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그동안 선물 포장박스를 처리하기가 곤란했었는데 이제는 한결 편리해졌어요. 이런 아이디어 제품이 많이 나와서 주부들의 고민을 덜어줬으면 좋겠어요.”
최근 추석 선물을 받은 주부 박씨(42)의 이야기다. 박씨에게 그동안 선물상자는 처치곤란 고민거리였지만 이제는 택배상자를 옷걸이로 활용하고 있다. 발송자가 옷걸이로 활용할 수 있는 택배상자를 보내면서 상자에 나와 있는 대로 자르고 접으면 친환경 종이 옷걸이로 재사용한다. 박씨는 “전국적으로 하루에 버려지는 택배상자의 수를 생각해 보면 이 같은 친환경 디자인 제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에코(Eco) 상품이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요소로 부각되면서 친환경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 유럽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기업은 2004년에 비해 각각 4배와 6배 증가했다. 하지만 에코에 대한 높은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성 측면에서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친환경 에코상품이라고 해도 실생활 활용과 품질·기능에서 기본을 갖추지 못하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코를 위해 소비자의 불편과 희생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품질과 성능을 포기한 에코가 아닌 친환경 요소가 어우러진 사용편의성과 경제성, 시간적 혜택을 제공해야 소비자가 스스로 찾는다.
김기정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환경에너지팀장은 “산업화에 따른 자원소모와 소비 중심의 문화는 인류에게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친환경 소비를 이끌 수 있는 에코디자인은 제품, 서비스 판매를 위한 수단을 넘어 소비방식을 변화시키는 지적 자산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여는 열쇠 `에코디자인`
몇 해 전 불었던 웰빙 열풍으로 소비자들은 공공의 이익보다 가족 건강을 위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에너지효율과 내구성을 높여 가격 이상의 가치를 주는 친환경 제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행태는 모두 에코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렌드 매거진 `Trendwatching`은 친환경 제품은 자기만의 아이콘으로 여기는 소비 트렌드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에게 친환경 세제나 절전형 TV 같이 범용화된 그린 마케팅은 수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그 보다는 양계장이 아닌 방목한 달걀을 취급하는 버거킹을 이용한다든지, 적정한 수익을 농가에 돌려주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했다는 등의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에 더 반응한다.
김 팀장은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은 에코디자인 활동의 일환으로 유해물질 배제, 에너지 효율 개선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며 “규제 준수를 위한 소극적 에코디자인과 그린마케팅으로 활용하려는 두 가지 방식의 에코디자인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코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비의 혁신이 필요하다. 애플 아이팟은 에코디자인 콘셉트로 만들어 진 제품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의 소비행태를 바꿨다. CD를 생산하는 데 투입됐던 많은 플라스틱 포장을 없애는 효과를 가져왔다. `녹색 올림픽`을 표방한 `2012 런던 올림픽`은 영국의 각 가정이 집안 커튼에 태양광 모듈을 부착하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에코 컨슈머`가 해답
EU집행위는 지난해 에너지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에코디자인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은 새로운 5개 제품군에 대한 에코디자인 표준체계에 대한 연구와 에너지 절약에 중점을 뒀다. EU집행위는 2014년까지 22개의 새로운 기준과 에너지 라벨링 규정을 승인할 계획이다. 제품 환경영향의 80%를 좌우하는 `설계단계`에서 환경성을 강화해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환경영향 감소 및 에너지효율을 증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유럽에 에너지 관련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은 에코디자인 지침에서 정한 이행요건을 반드시 따라야 하고 이를 위반한 제품은 판매·유통을 할 수 없다. 특히 2005년 발효된 에코디자인 지침 대상제품이 에너지 사용제품에서 2009년 에너지 관련제품으로 대상이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대상제품이 에너지 관련제품으로 확대되면서 국내 EU 수출 제품군의 70%가 포함됐다”며 “국내 산업계에 대한 에코디자인 기술적용 제품 컨설팅, 전문인력 양성 등 해외규제 대응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에코디자인 활동이 강화되면서 폐전자제품 재활용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올해 초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보고서를 통해 재활용 폐전자 제품량은 지난 2000년 2만9000톤에서 2010년 14만톤으로 5배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에코디자인 적용 수준을 평가하는 `전자제품 재질·구조개선사항 평가제도` 도입 이후 재활용량은 2008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실제 유럽에 냉장고를 수출하는 A사는 납, 수은 등 유럽 국제환경규제(RoHS)에서 정한 6대 유해물질을 배제하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유럽의 대기전력 기준인 Erp(Energy-related Product)에 따라 올해 7월부터 에너지효율 A+ 등급을 달성했으며 폐전기·전자제품처리지침(WEEE)에 의거 재활용률도 75% 이상 끌어올렸다.
이화조 영남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이제 전자제품은 비용이나 품질만을 생각해서는 시장성이 없다”며 “대기업은 어느 정도 에코에 대한 자립도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에코상품 개발 등 정부의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박스/기업들이 에코디자인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
친환경 기업 정보사이트인 인바이런멘틀 리더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10명 중 9명은 향후 TV 구매시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한 6명은 에너지효율 등 환경친화적 기능을 위해 추가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소비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친환경 상품에 관심이 있으며 이 가운데 73%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LG경제연구원 측은 “이러한 소비패턴의 변화는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친환경적으로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해 준다”며 “에코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의 제품 개발에 환경 영향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하나의 사례”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 환경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에코디자인을 강화한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규제 수준의 영역을 넘어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기업 이미지 제고와 그린마케팅에 에코디자인을 연계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에코디자인이란 제품의 시장성, 기능성 등 제품이 기본적으로 만족해야 하는 다양한 요구사항과 함께 제품 전 과정(Life Cycle)에서의 지속적인 환경성과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을 제품 설계에 반영하는 일련의 기업활동을 말한다.
특별취재팀=김동석 부장(팀장) green@etnews.com 함봉균·박태준·조정형·최호·유선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