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이 무르익었다. 주요 후보자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어렴풋한 수준이지만 차기 정부의 비전도 나왔다. 무엇보다 ICT·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해 지금 정권과 확실한 선을 긋겠다는 분위기가 읽혀진다. 현 정권에서 홀대 받았다고 생각하는 산업계와 과학기술계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과연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면 지금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질까. 내심 기대는 갖지만 불안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국내외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유럽에서 시작된 글로벌 재정과 금융 위기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국 경기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수출에 사활을 거는 우리에게는 악재 중의 악재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계층·지역·세대 간 불균형과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고용 없는 성장에 계층 간 갈등, 세대 간 격차가 얽혔지만 해법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신성장동력이 절실한데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만큼 우리를 둘러싼 안팎의 상황이 좋지 않다. 겉으로만 보면 ICT와 과학기술 분야는 미시 변수다. 차기 정부의 주요 어젠다에서 자칫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
한쪽만 보는 단편적인 생각이다. 사회적인 갈등과 불균형 모두 따지고 보면 성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동력의 원천은 결국 융·복합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ICT가 저변을 넓히면서 인프라로 자리 잡았기에 융합 시대를 여는 단초를 마련했다. 기술의 중요성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 중심 사회를 구축해야 우리만의 독자적인 성장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사회 전반에 기술 우대 풍토가 마련돼야 지속적인 국가 발전이 가능하다.
어느 누구보다 대선 후보자도 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지난 21일 열린 `전자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식`에서 주요 후보가 밝힌 철학과 비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 참석한 안철수 후보는 “창의력에 기반을 둔 창조 경제사회를 만들자”며 “구체적인 ICT정책을 조만간 제시하겠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역시 30주년을 축하하며 ICT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도 대변인을 통한 축사에서 “정보통신미디어부를 설립해 산업이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기념식엔 ICT산업계와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1000여명의 인사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그만큼 이 자리의 발표 내용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 후보가 산업계와 정식으로 약속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일까지, 아니 선거 후에도 변치 않는 약속이기를 바랄 뿐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