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9월 15일, 이동전화 가입자 수(2103만4000명)가 마침내 유선전화 가입자 수(2078만2000명)를 추월했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에 이동전화가 도입된 지 11년 5개월 만이다.
이동통신 사업자 간 경쟁,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 상용화 등 일대 변혁기를 거친 이동통신 시장은 진보를 거듭했다. 보급에 걸림돌이었던 높은 통신요금과 단말기 가격은 소비자 눈높이까지 내려왔고 통화품질 불만은 기술 진보와 함께 사라졌다.
폭발적인 이동전화 가입자 수 증가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통신시장, 이동전화가 대세=우리나라에 이동전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1984년 3월 차량용 이동전화(카폰)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장님 폰`으로 불린 카폰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아날로그 이동전화 서비스가 보급된 1988년 이전까지 1만여대만 보급되고 말았다.
통신시장이 이동전화 중심으로 본격 재편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1980년대 말부터 꾸준히 늘어나던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1990년대 이동전화시장의 팽창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안보 이유로 제약을 받아오던 이동통신 분야의 족쇄가 풀리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2만명을 넘어섰고 1990년 8만명으로 늘어났다.
사실 1990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이동전화 보급률은 1.72대로 스웨덴 53.53대, 미국 20.76대, 일본 5.56대에 비해 낮은 상태였다. 시설과 기술 부족으로 통화중 단절과 혼선 등 서비스 질이 낮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업계의 노력과 경쟁이 이어지면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1993년 말 48만명을 돌파했고 1994년에는 이동전화가입자가 96만명을 넘어서며 사실상 이동전화 100만명 시대가 열렸다.
기지개를 켠 이동전화 시장은 CDMA 상용화로 일대 변혁기에 접어들었다.
1996년 국내 기술로 CDMA 상용화가 이뤄지면서 편의성과 서비스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이는 곧 이동전화 수요 증가로 이어졌고 이동통신 사업자 간 경쟁을 촉발했다.
SK텔레콤이 주도하는 시장에 새로운 경쟁업체가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가입자 유치경쟁이 펼쳐졌다. 제2 이동전화사업체인 신세기통신이 시장이 진입하기 직전인 1995년 말에는 이동전화가입자가 164만1000명까지 증가했다. 신세기통신이 영업을 개시한 1996년에는 313만명까지 늘어났다. 유선전화 가입자(1969만명)와의 격차는 여전히 커보였지만 신규개통 실적은 이미 유선전화를 앞서기 시작했다.
1996년 1월 유선전화 가입자 순수증가분은 7만명, 2월에 6만명 등으로 두 달간 13만명이 늘었다. 이에 비해 이동전화 신규가입자 수는 1월에 5만8000명, 2월에는 17만2000명으로 두 달간 무려 23만명이 늘어났다. 일반전화 신규가입자 수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3월에도 휴대폰 신규가입자 수는 15만9000명에 이른 반면에 일반전화 가입자는 10만명에 채 못 미쳤다.
1994년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96만명이 늘었고 1995년에는 95만명이 증가해 월 평균 8만명씩 균일하게 증가했다. 이에 비해 이동전화는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49만명, 68만명이 늘어난 데 이어 1996년 100만명이상 신규 가입했다. 설비비가 폐지되고 단말기 가격이 대폭 내리는 등 이동전화가 대중화가 실현됐기 때문이다.
◇태풍의 핵 PCS=1997년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 한솔PCS의 PCS 3사가 저렴한 요금을 내세워 대대적인 시장쟁탈전에 나섰다.
PCS 사업자의 가입자 확보 경쟁은 이동통신 시장의 양적인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5개 사업자가 경쟁이 돌입하면서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과 후발사업자 신세기통신의 양강 구도가 깨졌다.
016(한국통신프리텔), 018(한솔PCS), 019(LG텔레콤), 011(SK텔레콤), 017(신세기통신) 등 01X 번호가 자리 잡힌 것도 이때부터다. PCS가 젊은 층을 파고들면서 이동통신사의 마케팅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동전화에 대한 인식은 `필수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PCS 3개사가 영업을 시작한 1997년 말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700만명에 육박했다. 1998년에는 누적가입자 수가 1300만명을 넘어서며 마침내 이동전화가입자 1000만명 시대가 열렸다.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99년에 약 1000만명이 이동전화가입자로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9월 15일에는 누적 유선전화 가입자 수(2078만2000명)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당시 PCS는 이동전화 시장의 실질적인 성장을 주도했다. 1999년 한통프리텔 가입자 수는 400만명을 넘어섰다. 15년 이상 이통서비스를 제공해온 SK텔레콤(880만여명)에 이은 2위였다. LG텔레콤과 한솔PCS 또한 각각 300만명, 25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며 3개 회사의 전체 가입자수는 1000만명에 근접했다. 이동전화 시장의 45%를 PCS 사업자가 나눠 가졌다.
SK텔레콤과 후발업체 신세기통신이 독식했던 시장에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PCS 사업자가 뛰어든 지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과열로 치달았다. 이동통신 4개 사업자들이 무료통화 서비스를 광고하면서 제한조건을 밝히지 않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광고로 판정받아 법 위반 사실 신문공표 명령을 받는 등 볼썽사나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을 달궜던 5개사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1999년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합병하며 다시 한번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사업자로 부상했다. 이후 2001년 한국통신프리텔은 한솔PCS를 인수했고 LG텔레콤은 독자 생존하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됐다. 10년이 지나 현재의 이동통신 3사 체제가 굳어졌다.
◇이동통신 강국으로 도약=1999년 우리나라 국민의 이동전화 보급률은 45%까지 상승했다. 국민 두 명당 한 명꼴로 이동전화를 보유한 셈이다. 핀란드(62%), 노르웨이(54.8%), 스웨덴(51.9%), 홍콩(47.0%), 아이슬란드(46.4%)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이동전화 보급률이 높은 나라가 됐다.
가입자 수는 미국(6594만명), 일본(4394만명), 중국(3056만명), 이탈리아(2368만명)에 이어 세계 5위로 급부상했다.
이동통신 시장의 성장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이동통신 누적가입자 수는 2002년, 2006년 각각 3000만명, 4000만명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5000만명을 넘어서며 명실상부한 전 국민 이동전화 보유시대가 열렸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를 거쳐, 2006년 세계 최초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상용화, 2008년 LTE 시스템 핵심기술 개발, 2011년 세계 최초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 LTE-Advanced 개발 성공까지 이동통신기술 진화를 주도하며 세계 최고의 이동통신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 증가와 사업자 간 경쟁, 산업계의 기술개발 노력이 어우러져 선순환작용을 일으킨 것이 오늘날 국내 통신시장의 자생력을 키웠다는 평가다.
이상학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기획과장은 “업계의 과당경쟁과 그로 인한 문제점들도 나타났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성장을 지속해 왔다”며 “서비스와 단말기 양대 시장 육성에 모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이동통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부, 산업계의 노력과 폭발적으로 성장한 내수시장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표] 주요 통신서비스별 가입자 현황(단위: 천명)
(자료: 방송통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