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61] KT 민영화, 통신시장 완전경쟁체제 전환 <2002년 8월>

2002년 8월 20일 서울 우면동에서 국내 통신산업 역사에 획을 긋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1981년 12월 공사 형태 모습을 갖춘 한국전기통신공사가 21년 만에 완전한 민간 기업으로 거듭나는 자리였다. KT 민영화를 계기로 정부 자회사와 민간 기업이 혼재하던 국내 통신서비스 시장에 완전 민간 경쟁 시대가 열렸다.

[100대 사건_061] KT 민영화, 통신시장 완전경쟁체제 전환 <2002년 8월>
Photo Image
민영 KT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2003년 3월 KT 정기주주총회 현장. 연단에서 이용경 당시 사장이 주주들에게 안건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kr

KT는 이날 우면동 연구개발본부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다. 민영 KT 초대 사장을 선임하고 정관을 변경하는 등 마지막 민영화 절차를 완료했다.

민영 KT 초대 사령탑은 내로라하는 후보군을 제치고 이용경 당시 KTF 사장이 맡았다. 이 사장은 KT 출신으로 조직에 정통하고 유선과 무선 통신 양쪽에서 풍부한 경험을 지녔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사외이사 2명 증권 △사외이사 중 1인 이사회 의장 겸임 △감사위원회 신설 △경쟁사 사외이사 배제 강화 등 민영 기업에 걸맞은 경영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조항도 마련됐다. 이에 앞서 KT는 같은 해 4월 정부 보유 주식(28.34%)을 전량 매각해 민영화 준비를 마쳤다.

KT 민영화 의미는 단순히 공기업의 민간기업 전환에 머물지 않았다. 국내 통신 시장에 완전한 경쟁체제가 도입된다는 것을 뜻했다.

통신서비스는 국가 기간산업 특성상 대부분 나라에서 정부와 국영 통신사업자 중심으로 발전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KT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통신시장이 커지고 통신서비스도 다양화하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출자회사가 통신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시장과 정책 모두 왜곡이 발생했다.

결국 10년에 걸친 검토와 논란 끝에 2002년 KT 민영화가 완료됐다. 중간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 정부 소유 지분 매각 문제 등으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KT 민영화는 당사자인 KT는 물론이고 규제당국과 경쟁사업자 모두에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 KT로서는 공기업의 때를 벗고 체질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공기업 시절에나 어울릴 법한 업무관행을 개선하고 민간기업에 비해 방대한 조직 규모를 축소·효율화해야 했다. 직원 체질 개선도 필요했다.

민간 기업답게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고 순수 경쟁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을 찾는 것도 과제였다. 정부 힘을 빌리지 않고 치열한 통신 시장에서 나 홀로 설 수 있는 역량과 경쟁력을 갖춰나가야 했다.

규제 당국 측면에서는 통신 정책 대수술이 불가피했다. 정보통신부는 KT 민영화를 계기로 통신시장 규제 정책과 기본 사상을 다시 짜는 작업에 들어갔다.

민영 KT 출범 당시 한춘구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지원국장은 “KT는 민영화로 정부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주주 등의 자율적인 규제 아래 놓이게 됐다”며 “정부도 주주로서 역할을 다한 이상 모든 통신사업자를 같은 선상에 놓는 새로운 규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업자는 또 다른 차원의 숙제를 부여받았다. KT가 정부 품을 떠났다는 것은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 권한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간 정부 규제는 KT를 돕는 역할도 했지만 KT가 지나치게 사업을 넓히지 못하게 하는 차단기 기능도 해온 터였다.

당시 하나로통신, LG텔레콤 등 경쟁 사업자에게 막강한 통신 인프라를 갖춘 KT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통신 공룡 KT가 공기업으로서 공공성을 뒤로 하고 시장에서 실력 행사에 나서게 되면 통신 시장 경쟁 심화는 당연한 순서였다. 자연스레 KT와 맞서는 사업자도 통신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대응책을 마련했다.

KT 민영화가 해당 주체는 물론이고 국내 통신 시장과 정책 전 방위에 걸쳐 연쇄 파급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민영 KT 출범 10년째를 맞은 2012년 현재 KT 민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민영화 자체를 무의미한 조치로 보는 시각은 없지만 KT가 민영화 이후 이룬 성과를 놓고는 뒤섞인 평가가 나온다.

민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는 `CEO 리스크`가 여전하다. 회사 가치를 높이는 수익 극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직원들의 피로 누적과 반발, 오랜 기간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미래 수익사업 발굴 등이 아쉬운 점이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민영화와 이후 이뤄진 기업개선작업에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KT는 민영화 후 진정한 고객가치를 추구하는 민간 기업으로 변모했다. 경쟁 강화를 바탕으로 서비스 품질도 개선됐다. 유무선 통합,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 등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성과가 나타났다.

“당시 민영화하지 않았다면 KT는 죽은 기업이나 마찬가지가 됐을 것”이라는 당시 남중수 민영 KT 2대 사장의 말처럼 민영화는 KT 발전을 위한 기폭제가 됐다.

Photo Image
이용경 민영 KT 초대 사장(현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임교수)

◆ 이용경 민영 KT 초대 사장(현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임교수)

“KT에 민영화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인 동시에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민영 KT 초대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이용경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KT 민영화 초기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이 교수는 2002년 8월 민영 KT 출범 당시 정부와 회사 모두 기대가 컸다고 전했다.

“정부는 KT 민영화가 한국 통신시장을 선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당사자인 KT는 국영·출자기관이라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비즈니스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됐다며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높은 기대만큼 우려도 많았다. 통신 시장에서 사기업과 공기업이 함께 경쟁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KT 민영화는 필수였지만 제반 여건 조성 여부를 놓고는 이견이 적지 않았다.

정부 쪽에서는 KT가 민영화 이후에도 정상적인 기업으로서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성공적인 투자 유치(KT 지분 매각)가 가능한지 등 고민이 많았다.

“정부도 KT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KT가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IR설명회를 할 때면 항상 정보통신부 장차관급이 동석했습니다. 민영화 이후 통신 규제정책을 궁금해 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KT 내부에서도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민영화 이전에는 KT가 주류였지만 개방화된 경쟁 환경에서는 남보다 빨리, 그것도 잘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죠. KT 임직원들에게 `우리가 열심히 해도 한발 늦으면 고생만 한다. 변화가 중요하게 아니라 남보다 빨리 변하는 게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KT 혁신을 이루기 위해 제조업계에서 통용되던 `식스시그마` 경영을 통신서비스·품질 분야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며 변화를 꾀했다.

초대 사장으로서 KT 민영화 10년을 바라보는 생각은 어떨까. 이 교수는 KT가 갈수록 악화되는 통신산업 환경에서 본연의 강점에 집중하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나가기 바랐다.

“민영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치권 영향력 얘기가 나오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통신시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KT가 망 중립성, 종량제 등 각종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 지속가능한 경영환경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이 교수는 미국 벨연구소 출신으로 1990년대 초 KT에 합류한 후 무선통신개발단장, 연구개발본부장 등을 거쳐 2000년대 초 KTF와 민영 KT 사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2008년부터 5년간 제18대 국회의원(창조한국당)으로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전문가다. 2012년 5월 국회의원 임기를 마친 후 현재 KAIST 겸임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표] KT 주요 연혁

(자료: KT)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