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특집2-스타트업]독일 과학기술 창업 산실 `아들러스호프`

베를린 중심가 알렉산더플라츠역에서 시의 동서를 관통하는 전철(S선)을 타고 30분. 베를린-아들러스호프(Berlin-Adlershof)역에 들어서자 배낭을 둘러매거나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일어선다. 전철에서 내려서니 멀찍이 7·8층 정도 높이 건물 꼭대기에 `지멘스` 간판이 보인다. 전철역과 수직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창간 30주년특집2-스타트업]독일 과학기술 창업 산실 `아들러스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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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스호프 지역 과학기술단지 운영사 `비스타(WISTA)`

이들은 대부분 편안한 옷에 배낭 차림을 하고 훔볼트 공과대학과 단지에 위치한 905개 벤처기업, 대기업 연구소, 교육센터 건물로 흩어졌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한켠에 있는 비행 실험에 썼던 건물들이 눈에 띈다. 길 건너 맞은편에는 비행접시 모양을 한 건물이 서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헬름홀츠(helmholtz)` 건물이다. 여기서 미래 에너지를 찾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아들러스호프는 과학기술 집적 클러스터=아들러스호프는 독일의 대표 과학기술·미디어 벨트이자 성공적인 과학기술 집적 클러스터로 꼽힌다. 과학기술단지, 과학연구소, 미디어시티, 훔볼트대학, 기반산업지구 5개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지역의 시작은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2년 독일항공연구소(DLV)가 자리했다. `하늘의 왕자`로 불리던 폭격기 `포커`가 여기서 개발됐고, 1·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전투기를 생산하는 기지로 활용됐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당시에 사용했던 통풍터널 등 연구 시설이 단지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지역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동·서로 갈라진 후 동독지역에 포함됐다. 우주·항공 분야와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아카데미가 세워졌고 국영 TV방송국이 들어섰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통일한 후 동독지역 연구소와 기술 기반 회사가 경쟁력을 잃고 문을 닫았다. 우수한 동독 과학자 5000명가량이 실업자가 됐다. 이들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만들고 동독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1991년부터 아들러스호프 과학기술단지 건설이 시작됐다.

이후 이 지역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독일 정부와 유럽연합(EU)이 투자한 15억유로(약 2조1300억원)는 대부분 회수됐다. 초반에는 5개 연구소(혁신사업육성센터, 광학기술센터, 환경생명에너지기술센터, 정보미디어기술센터, 재료 및 마이크로시스템스기술연구소)로 출발했지만 현재(201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 4.2㎢, 일자리 1만4968개에 회사 905개, 과학연구소 17곳이 있는 대규모 집적단지가 됐다.

지난해 아들러스호프 지역에서 거둔 총수입은 16억유로(약 2조2750억원)다. 2011년에만 8% 성장했다. 이 가운데 과학기술단지에만 429개 회사가 들어서 있고 직원 7904명이 종사한다. 과학기술단지의 지난해 총수입은 전년보다 5.6% 늘었고, 투자금은 5.5% 증가했다. 지난해에만 39개 회사가 새로 입주했다. 지난 2001년 과학기술단지 고용 인력은 5380명으로 10년새 2000여명이 늘었다.

과학기술단지는 `비스타 유한회사(WISTA-Management GMBH)`가 관리한다. 베를린 주정부가 지분 98.93%를 가지고 운영 계획을 짠다. 기술 분야 컨설팅도 지원하고 훔볼트대학과 협력해 아들러스호프 분석과학대학원(SALSA)을 설립, 기초 기술 연구를 돕는다. 저렴한 가격에 사무실, 건물과 용지를 임대하고 있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adlershof.de)에서 실시간 부동산 정보를 제공해 저렴한 가격에 사무실을 임차할 수 있다.

미디어 시티에는 회사 138곳이 입주해 1744명이 일한다. 연구소 11곳에는 1820명이 고용돼 있다. 훔볼트대학에 다니는 학생 수만 8034명이고, 대학 내 연구소는 6곳이며 1004명이 종사하고 있다. 외곽에는 주거단지와 편의시설이 있다. 아파트, 상점, 호텔, 레스토랑, 극장, 학교 등 337개 기반시설 회사가 도시의 한 축을 담당한다.

◇베를린 스타트업의 메카, IZBM=베를린혁신센터(IZBM:Innovations-Zentrum Berlin Managemanagement)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면에 하얀 벽을 배경으로 회사 명패 45개가 붙어 있다. 이 센터에서 육성하는 회사다. 유럽 사람치고 `프리츠박스`를 모르기는 쉽지 않다. 무선랜 공유기와 TV셋톱박스를 겸해 유럽 가정 거실 TV 선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제품을 만든 회사 AVM도 이곳을 거쳤다.

성공적인 과학단지로 발돋움한 아들러스호프는 스타트업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도 하고 있다. 사업 추진 당시부터 `혁신 및 비즈니스인큐베이션센터(IGZ:Innovations-und GrunderZentrum)`를 만들어 기술개발, 협력, 자금조달, 홍보 등을 도왔다. 199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진출과 창업을 돕는 `국제비즈니스인큐베이터(OWZ:Internationales Grunderzentrum)`를 설립했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창업자가 회사 설립부터 준비해야 할 것을 돕는다. 1997년에는 베를린 시의회 지원을 받아 인큐베이팅 공간을 마련하고 IGZ와 OWZ가 합작해 베를린 내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IZBM을 세웠다. IZBM에서 지역 내 창업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베를린자유대 창업센터(BIG:Berliner Innovations-und Grunder-zentrum), 훔볼트대학(Humboldt Innovation), 베를린예술대·베를린공대(CHIC:Charlotten-burger Innovations-Centrum), 베를린자유대(FU:Freie Universitat Berlin) 4개 대학은 IZBM과 연계해 인큐베이팅 센터를 운영한다. 창업하고 싶은 대학생은 각 대학 센터에서 먼저 지원을 받는다. 졸업을 앞둔 학생은 지도교수와 면담하고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제출한다. 대학에서는 1년간 독일 정부가 출자한 자금으로 기자재와 생활비를 지원한다. 대학마다 한 해 평균 20개 회사가 창업한다.

미혼자는 매달 1800유로(약 255만9000원), 기혼자는 최고 2700유로(약 384만원)까지 받는다. 생활고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는 것을 막아 사업에만 열중할 수 있게 한다. 공동창업자도 모두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이후 사업이 성장하기 시작하면 아들러스호프에 사무실을 열고 터를 닦는다. 1년 동안 성과를 못 냈을 때도 실패한 이유가 합당하면 상환 의무가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성실한 창업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독일을 넘어 글로벌 창업 기지로= 베를린 지역 대학 출신들이 주축으로 활동하던 IZBM센터에는 최근에는 동유럽, 서유럽 각지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플로리안 자이프 IZBM 대표는 “처음 목표는 동유럽 지역 창업가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일본, 브라질 등에서도 독일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기업의 해외 진출뿐만 아니라 해외 우수 인재를 베를린으로 모으는 기능으로 독일 경제 활성화를 돕는다는 취지다. 단지에는 글로벌 기업을 위한 국제사무실(Internationlaes Buro)이 있어서 유럽 기업과 협력 사업을 돕고 매년 국제 과학기술파크 국제 콘퍼런스를 연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기술 기반 회사에 아들러스호프는 최적지다. 베를린 4개 대학에서 배출된 인재를 쉽게 영입할 수 있고, 1900년대부터 쌓아온 기술 노하우가 지역 저변에 깔려 있어서다. 대기업 연구소가 가까이 있고 교수가 직접 창업하는 사례도 있어 첨단 기술 접근성도 높다. 단지에 모인 회사나 연구소와 제휴하기도 편하다.

아들러스호프는 세계적으로 과학기술단지를 육성하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벤치마킹하는 롤모델이 됐다. 한국에서는 충북테크노파크가 이곳과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IZBM과 베를린시, 베를린 내 대학들이 연계해 탄탄한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는 이 모델은 다른 나라 스타트업 지원 기관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기자가 아들러스호프를 찾은 지난 6월에는 모로코 산업장관이 이곳을 찾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탐방하고 돌아갔다.


아들러스호프 개요

자료:2011 아들러스호프 리포트(비스타)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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