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의 모 광산업체 사장을 만났다. 회사 경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수년간 수억원을 들여 신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시장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투자금만 모두 날리게 됐다. 매출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직원 월급날이 돌아올 때면 신경성 설사를 한다고 했다. 정부 연구개발(R&D) 지원도 경쟁률이 갈수록 치열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이어졌다. 소주잔에 비친 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광산업 메카`로 알려진 광주 첨단산업단지의 분위기가 심상치 있다. 해마다 거듭해온 고속성장세가 지난해부터 주춤세로 돌아섰다. 위기감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한국광산업진흥회가 지역 기업 3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조사 대상 기업의 총매출은 2조6101억원으로 전년도 2조5400억원보다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올해 매출 목표인 2조7400억원 달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해마다 50% 가까이 급성장하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이는 광산업 주력분야인 발광다이오드(LED)가 유럽발 재정위기 등으로 고전한 결과다. 민간시장 LED 도입이 늦어지면서 자본력과 R&D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큰 짐이 됐다.
세계시장의 80%를 점령한 광파워 분배기는 국내기업 간 출혈경쟁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무엇보다 올해 광산업 3단계 사업이 끝나면 정부 지원예산도 모두 끊긴다.
당장 내년부터 호남광역선도산업으로 지원하는 40여곳을 제외하고는 기업 지원이 사라진다. R&D를 비롯해 판로 개척 등을 중소기업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기업 지원기관 사정도 마찬가지다. 신규사업과 예산이 없다 보니 사업 축소와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광주광산업은 국내 지역혁신 클러스터 중 성공사례로 평가받았다. 지자체의 강력한 육성 의지와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으로 초기 클러스터의 성공적 정착을 낳았다.
지금은 분명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 위기는 곧 기회기도 하다. 다른 기업 상황도 다 어렵기 때문이다. 유럽 경제 위기 등으로 경쟁국이 투자를 줄일 때 오히려 지원을 강화하는 역발상이 그래서 필요하다. 솔개는 제2의 성장을 위해 부리와 발톱을 스스로 깬다고 한다. 광주광산업도 솔개의 지혜에서 혁신과 변화의 답을 찾기를 바란다.
서인주 전국취재 기자 si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