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가 초호황이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이 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올해 합산 영업이익이 300조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인쇄회로기판(PCB) 업계는 울상이다. 금과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반면 공급 가격은 달라지지 않아서다.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PCB&반도체패키징산업협회(KPCA)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구리 가격은 연초 대비 각각 50%와 30% 상승했다. 그러나 이를 납품 단가에 반영하지 못한 기업은 절반 이상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단가 인하를 요구받은 기업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도체 제조사는 원자재인 기판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 방어가 어려워 단가 인상을 억제하려고 한다. 기판 업체는 고객사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어 원자재값이 오른 만큼 제 값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반도체 호황 이면에 역설이 빚어지는 원인이다.
이같은 상황은 기판뿐만 아니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 전반이 마찬가지다. 반도체 제조사가 소부장 협력사보다 가격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하는 구조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의 동반성장이 절실하다. 반도체는 소재와 부품을 첨단 장비에 투입, 수백 단계의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공급망이 무너지면 국내 반도체 산업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반도체 제조사만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게 아니라 생태계와 상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생 협력에 기반을 둔 단가 구조를 마련하고 납품단가 연동제 준수 등이 대책으로 거론된다. 동반 성장 구조 확보와 제도 개선을 통해 공존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