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중·일 `ESS 삼국지`

천하 맹장 여포에게 서주성을 빼앗긴 유비는 한나라의 전권을 장악한 조조에게 몸을 의탁한다. 어항 속 금붕어,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유비는 한나라 황실로부터 조조를 제거하라는 밀지를 받고 원술 토벌을 핑계로 5만 군사를 이끌고 조조의 품을 떠나 이후에 촉을 건국한다.

전력 사정이 위태롭다. 전력경보가 `관심`에서 `주의`로, 다시 `관심` 단계로 오르내린다. 전력수급은 이 주가 더 걱정이다. 직장인이 휴가를 끝내고 업무에 복귀하고 공장 생산라인도 풀가동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전력당국도 절전 캠페인이나 수요관리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다.

전기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많거나 전기 가격이 비쌀 때 꺼내 쓰는 전력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가 전력대란의 대안으로 부상했다. `전력 저수지` 격인 ESS가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돌리는 비상발전기 시장을 대체할 시기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러한 ESS 생태계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여포·유비 3인의 대결과 닮았다. 10여년 전 2차전지 산업을 개척했지만 시장을 내준 일본(조조)의 패착, 정부의 지원과 무한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점유율을 높여가는 중국(여포)의 패기, 출발은 늦었지만 일본의 기술력을 추월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한국(유비)의 패권. 2차전지에서 업그레이드된 ESS 글로벌 시장을 놓고 한·중·일 `ESS 삼국지`의 전운이 감돈다.

ESS 시장 규모는 올해 10조6000억원이다. 2020년이면 58조원 이상으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원전 사태로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일본이 360억엔을 투입해 ESS 설치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다. 2차전지의 패착을 ESS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중국 역시 `뭉칫돈`을 쏟아붓는다.

우리의 ESS 시장 창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실증사업과 일부 수출이 전부다. 일본·중국보다 시장 규모가 작고 이를 활용할 전력 인프라가 부족하다. ESS 설치 유인 부족은 국내 시장 형성을 더디게 하고 산업화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지식경제부는 보조금 지원과 의무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중의 속도전에 밀리는 분위기다.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돌파구가 필요하다. 축구에서 그렇듯, 특히 한일전은 없던 힘도 생기게 한다. ESS는 기술 축적과 인적 인프라가 필수다. 한국전력과 전력계약(100㎾ 이상)을 맺은 건물 12만3000군데에 설치 의무화를 서둘러야 한다. 통신·금융 등 공공 성격의 민간기업 동참도 이끌어야 한다.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군사로 맞아 삼국을 통일했듯이 `ESS 삼국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제갈량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