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부진을 겪던 에어컨 판매가 최근 2, 3주간의 기록적 폭염 속에 제품이 없어서 못 파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하이마트, 디지털프라자 등 주요 매장 에어컨 보유 물량은 거의 소진 단계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출고가에서 최대 30% 가까이 할인하던 이벤트도 완전히 사라졌다. 매장에서 소비자는 원하는 브랜드나 모델을 고르는 게 아니라 에어컨 재고나 매장 전시제품을 선착순으로 구매해야 할 상황이다.
7일 가전·유통업계에 따르면 7월 하순 이후 에어컨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35도가 넘는 폭염과 열대야가 10일 이상 이어진 데다 우리나라 선수의 선전으로 런던 올림픽 심야시청이 늘면서 에어컨 판매에 가속도가 붙었다.
LG전자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21일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에어컨 매출이 상승하면서 7월 상순 대비 7월 하순 판매량이 4배 정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7월 에어컨 판매량이 6월보다 3배 늘었고, 7월말 판매량은 6월말과 비교 4배 정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의 지난달 20~30일 에어컨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40%나 늘었다. 하이마트는 지난 29일 하루에만 1만4775대의 에어컨을 팔아 일 판매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 디지털프라자 관계자는 “전국 점포에 걸쳐 하루, 이틀 정도의 에어컨 공급물량만 남아있다”며 “전국 재고 상황을 봐가며 판매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올해 에어컨 판매는 이미 `완판`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며 “제조사에서도 더 나올 제품이 없고, 사실상 이번 주 중 올 에어컨 판매는 끝난다”고 밝혔다.
그동안 삼성·LG 등 가전사는 물론이고 주요 가전판매점은 에어컨 시장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3월부터 진행한 예약판매도 시원치 않았고, 예년 같으면 시즌을 마감해야할 7월 중순까지 판매가 극도로 부진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7월말부터 이어진 폭염 덕택에 올해 판매분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올해 에어컨 판매가 지난해 사상최대를 기록했던 수준까지 오르지는 못할 전망이다. 상반기 내내 판매가 적었고, 제조사가 이를 반영해 생산량을 조절해 왔다는 것이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시즌 막판 수요가 늘면서 일부 모델을 급히 추가 생산했지만 부품 재고와 출고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생산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며 “지난해보다는 판매가 소폭 줄겠지만 그나마 늦더위 덕분에 빠르게 실적을 회복했다”고 전했다.
이번주 내수 에어컨 판매는 사실상 마무리된다. 하지만 주문받은 물량의 배송과 설치 등으로 이달 말까지 에어컨 관련 업무는 바쁘게 돌아간다. 삼성, LG같은 제조사들은 설치 기사를 6월보다 최대 두 배까지 늘렸다. 오후 10시가 넘은 심야시간대 방문 설치까지 나서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주문 후 댁내 설치까지는 최대 3주까지 걸리고 있다.
올해 에어컨은 극심한 부진이라던 업황이 불과 2, 3주 만에 제품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으로 급변했다. 날씨에 따라 에어컨 판매 피크타임이 이전한 것이다. 한반도 기후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 주산업은 농업·어업이다. 하지만 올해 내수 에어컨 시장의 급변은 가전, IT 부문에서도 기후변화 따른 날씨 경영, 제품 수요예측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영한 대표 사례가 되고 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