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샐러리맨 창업사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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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가 `스타트업(창업) 아카데미`를 열었다. 학생을 모집해 보니 전체 지원자 중 60% 이상이 직장인이었다. 교육생으로 최종 선발된 85명 중 직장인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취업 관문을 어렵게 통과해 직장을 다니지만 고민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창업에 목을 매는 것은 청년이 아니라 오히려 40·50대 직장인이다. 20·30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비중은 10년 전 56%에서 17% 수준까지 줄었다. 그 빈자리를 40·50대 생계형 창업자들이 채운다.

모바일 리서치업체 아이디인큐가 전국 직장인 200명을 상대로 창업 관심도를 조사했다. 전체 응답자의 58%(116명)가 `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 혹은 주말을 이용해 창업 교육에 참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전혀 의향이 없다`는 사람은 13명(6.5%)에 불과했다. 직장인에게 창업은 이제 단순한 관심을 넘어 심각한 스트레스 수준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76명에게 설문한 결과 53.2%가 일터에 다니면서도 별도 사업 아이템을 찾거나 창업 정보를 수시로 모으는 등 `창업 강박증`에 시달린다.

샐러리맨은 창업을 꿈꾸지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창업을 결심하는 순간, 가족 중 열에 아홉은 `무조건` 반대다. 좋은 스펙에 멀쩡한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라면 창업하기도 전에 `정신 나간 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창업 두려움은 대한민국이 세계적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한국인은 불과 11%만이 창업을 `좋은 기회`로 생각한다. `창업할 능력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27%에 머문다. 특히 `실패가 두렵다`고 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45%에 달해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월급쟁이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선입견에 직장인은 더욱 위축된다. 기업가와 직장인은 흔히 `마인드`부터 다르다고 한다. 기업가는 행동하고 실현하는 데 집중하는 반면에 샐러리맨은 아무래도 소극적이다. 기업가가 존경받는 것도 바로 이런 실천력과 도전정신 때문이다. `월급쟁이 정신`으로는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남기 어렵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기업가와 월급쟁이가 전혀 딴 세상 사람은 아니다. 비즈니스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링크드인이 창업자 1만3000명을 분석했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는 주로 애플·구글·야후·이베이·일렉트로닉아츠(EA)·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정보기술(IT) 공룡기업에서 경험을 쌓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보통 30∼49세에 창업하며 직장 경력도 평균 2년 이상이다. 미국 창업자 대부분이 직장인 출신이라는 얘기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벤처 CEO 상당수가 삼성·LG·현대 등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도 현대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한 월급쟁이 출신이다. 어린 시절 경북 포항에서 어렵게 생활한 이명박 대통령의 유일한 꿈은 번듯한 직장에 매일 출근해 일하는 `월급쟁이`였다. 결국 현대건설에 입사해 사장까지 초고속 승진으로 꿈을 이뤘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평가는 달라도, 그가 샐러리맨 성공 신화를 보여준 자수성가형 인물임은 분명하다.

창업과 직장은 선택의 문제일 뿐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 넘치는 열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도전해도 나쁘지 않지만, 직장 경험을 거쳐 창업하면 성공 확률이 더 높다. 창업한 회사가 쫄딱 망해 다시 샐러리맨으로 돌아와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누가 뭐래도 지금 다니는 직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창업사관학교다.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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