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미래다]<1부·끝>멘토가 필요하다 (14)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닷컴시대 창업가 대부분 과거 `닷컴 붐`이 일던 10년 전과 비교해 창업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입을 모은다. 절차와 규제가 사라졌고 정책자금을 받을 기회는 늘었다. 창업 시장의 개선과 변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KAIST 초빙교수)이다. 벤처업체 메디슨 대표와 벤처협회장을 역임한 그는 여전히 스타트업·벤처에 높은 애정과 관심을 나타낸다. 스타트업 창업가의 멘토로 스타트업·벤처 정책 개발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민화 회장을 강병준 벤처과학부장이 만났다.

-강병준 벤처과학부장=여전히 `벤처`하면 이민화를 꼽는다. 벤처에 관심이 큰 이유가 있다면.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한 마디로 `정`이다. 벤처협회를 만들고 업계를 위해 많은 애정을 쏟아 부었다. 누구보다 애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강병준=닷컴 버블 후 벤처 관심이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스타트업`이라는 용어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이민화=지난 2000년 전후 벤처 붐은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이었다. 지금은 저성장 탈피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이유는 대기업의 한계다. 대기업은 성장하지만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역할은 벤처가 할 수 있다.

-강병준=현재의 스타트업 창업 붐이 선진국의 고용 트렌드와 비교할 때 일부에서는 좀 늦었다는 시각도 있다. 시기적으로는 어떻게 보는가.

△이민화=더 늦지 않은 게 다행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3년가량 늦었다. 과거 닷컴 붐 당시에 우리나라는 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래서 인터넷 선진국이 됐다. 당시를 인터넷·PC혁명이라면 지금은 모바일 스마트 혁명기다. 아이폰은 우리가 세계에서 50번째로 도입했다. 2009년 스마트폰 보급률이 1%대로 OECD 최저 수준에 그쳤다. 3년 늦은 만큼 스마트경제를 이끌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지 못한 게 아쉽다.

-강병준=원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이민화=정부 규제를 들 수 있다. 아이폰 도입 과정만이 아니다. 무선인터넷, 공인인증서, 웹 표준, 액티브X 강제 등 모두 산업계 입장에서는 규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같은 개방형 경제와 플랫폼 주도의 비즈니스 모델이 정착돼야 한다. 한 마디로 인터넷은 빨랐지만 모바일은 뒤처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강병준=그래도 창업 환경은 많이 좋아지지 않았나.

△이민화=맞다. 다만 정부 지원이 다소 과다하다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면 언제나 거품이 끼곤 한다. 거품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이게 오히려 관심과 투자로 진화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버블은 패러다임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강병준=좋은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취업이 안 돼 불가피하게 창업한다는 말도 있다.

△이민화=그건 옳지 않다. 그런 창업은 막아야 한다. 창업은 창조적 도전이다. 아이디어, 기술이 있는 사람이 창업해야 한다. 아이디어가 없다면 생계형 창업이다. 생계형 창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이미 생계형 창업은 과다하다. 자영업자수가 OECD 최고 수준이다. 3년 내 절반이 망한다. 취업 못해 창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창업은 본인이 갖고 있는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것이다.

-강병준=창업에 있어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하나.

△이민화=창조적 도전만을 기업가정신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높다. 도전적 혁신과 기업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노력이 잘 섞여야 한다. 회사에서 돈을 벌어 주는 건 혁신 부서만이 아니다. 물건을 만들고 파는 수익 창출도 혁신으로 봐야 한다. 계속 도전만 하는 것을 기업가 정신으로 보면 대다수가 망한다. 선순환 개념이 포함돼야 한다. 그래서 기업가정신에 부가가치 개념을 넣고자 한다. 부가가치 창출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월가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애플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는 애플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서다. 월가에는 그게 없다. 기업가는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창업자에게 처음 하는 질문이 `이 사회에 어떤 가치를 창출하겠느냐`다. 두 번째는 `창출한 가치를 어떻게 분배 받을 것이냐`를 묻는다.

-강병준=벤처산업이 태동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과거와 지금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어떻게 보나.

△이민화=분명히 다르다. 과거에는 목숨걸고 창업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가벼운 창업이다. 또 과거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창업한다`고 말했다. 우리 기술의 자존심을 걸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다소 거창하게 말했다. 요즘 청년 창업가는 `재미로 창업한다`고 말한다. 시대가 변했다. 즐거운 창업을 원한다.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정도가 심하면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 한번 창업하면 죽자 살자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병준=창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이민화=균형은 필요하다. 다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으로 요즘 청년 창업가를 설득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너를 위해 창업하라면 다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식이다. 매일 회사가 시키는 것만 하는 `스펙 인생`을 살겠느냐는 식이다.

-강병준=가벼운 창업을 우해서는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화=미국은 재도전 문화가 잘 돼 있다. 우리는 없다. 미국 성공창업가 평균 창업횟수는 2.8회다. 우리나라에서 창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신용불량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국가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10만명 창업하면 5년 후 5만명이 신용불량자다. 국가가 잘못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는 선의의 실패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강병준=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년 창업자가 기업에 취업해 경험 쌓기기 필요하지 않나. 아니면 오히려 도전과 패기가 왕성한 인생 초반에 창업하는 것을 권하는가.

△이민화=미국을 보면 창업을 많이 하는 나이가 20대가 아닌 40대다. 대학 재학하면서 창업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90%는 기업에서 내공을 쌓고 창업한다. 다만 학교에 있을 때부터 창업 마인드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강병준=창업 인프라 측면에서 창업자에게 빼 놓을 수 없는 게 `자금`이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외국과 비교해 어떤가.

△이민화=미국과 비교하면 두 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과 엔젤투자자금 규모가 각각 25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엔젤이 350억원, 벤처캐피털이 1조5000억원 수준이다. 극명한 차이다.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자금은 벤처캐피털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엔젤이 넣어야 한다. 미국에는 엔젤과 벤처캐피털이 균형을 이루는데 우리는 극명히 차이가 난다. 이 같은 불균형이 나오는 원인으로 중간회수 시장 부재를 꼽고 싶다. 미국은 중간회수 시장 규모가 상장 회수 시장(IPO)보다 10배 크다. 한국은 중간회수 시장이 거의 없다. 중간회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엔젤이 등장하도록 해야 한다. 본질적 해결책이고 미국만의 강점이다.

-강병준=중간회수 시장 활성화는 중요한 문제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 달라.

△이민화=창업기업이 상장(IPO)하는데 10년이 걸린다. 창업자에게 투자 후 10년 있다가 회수하라면 아무도 투자 안 한다. 중간회수시장은 창업 후 5년 안팎 기업이 대상이다. 중간 회수시장이 중요한 것은 회사가 보통 5년간은 기술개발로 제품을 완성하고 그 다음 5년 시장을 개척하기 때문이다. 추가 2년 회사를 다듬어 상장한다.

제품이 나올 시점인 5년차에는 매출이 적다. 일반 투자자 자금을 받기가 힘들다. 기업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도 적정하지 않다. 일반투자자가 들어갈 시장이 아니다. 주식시장 형태를 띨 수 없다. 이 시장에 참여해야 할 곳이 대기업이다. 바로 인수합병(M&A)시장이다. 가장 발달한 곳이 미국이다. 미국 M&A는 IP시장의 10배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중간회수시장을 프리보드나 코넥스로 채우려고 한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강병준=기업가가 회사를 매각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이민화=정확히 말하면 저가에 사겠다는 요구에 대한 거부감으로 봐야 한다.

-강병준=M&A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보인다. 적장한 가격에 매각하고 매수하는 공감대 위해서 말이다.

△이민화=그것을 공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주먹구구식이 될 수 있다. 시장에 많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모여 거래를 하다보면 가격이 형성된다. 지금 문제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를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중개하는 그룹이 어느 정도 모여야 한다. 시장에 모이지 않다보니 가격 형성이 안 된다.

-강병준=기업을 사려는 곳이 많은가.

△이민화=수요는 많다. 대기업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내부혁신을 해보지만 효율성에 한계가 있다. 대기업 혁신과 스타트업 혁신에 비용 측면에서 20배 차이가 난다. 스타트업 혁신 결과를 대기업은 10배 주고 매수하면 모두가 윈윈(Win-Win)한다. 국가 전체로도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미국이 그런 시스템이다. 500대 기업 연구개발(R&D) 투자 줄고, M&A는 늘고 있다.

-강병준=그런 측면에서 대기업 역할도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이민화=맞다. 대기업은 시장에서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벤처나 스타트업이 대기업 플랫폼을 활용해 혁신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국가경제 효율성이 높아진다.

-강병준=산업계에서 차기 정부에 중소기업부 신설과 정보통신기술(ICT) 독임부처 설립에 관심이 크다.

△이민화=정부 구조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정부도 플랫폼으로 바뀌어야 한다. 애플의 앱스토어처럼 모든 정부 부처가 보유한 정책과 정보를 개방해야 한다. 그러면 서로 협조가 쉽게 된다. 산업계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강병준=본의 아니게 벤처 멘토로서 대학생 혹은 청년 창업가와 대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나.

△이민화=너 자신을 위해 기업가정신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도전이 행복을 준다. 안정은 불행하지 않을 뿐이다. 행복해지려면 기업가적 도전정신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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