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인가, 고민인가”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잠행 중이다. 지난 6월 8일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두 달간 정부측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지식경제부가 지난달 19일 한전에 전기요금 인상률을 4~5%대로 맞춰줄 것을 권고한 공문을 보낸 이후 지금까지 전기요금 인상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안 관련 인상폭을 낮출 수 없다는 고집을 부림과 동시에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한전은 지난달 17일 전기위원회에서 부결된 10.7%의 인상안이 사실상 마지노선으로 본다. 최초 13.1%의 인상안 부결로 연료비 연동제 미수금 보전이라는 편법까지 동원해 최대한 인상률을 낮춘 것으로 더 이상의 인하는 힘들다는 자세다.
주무 부처 지경부로부터는 4~5%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 받은 상황. 한전 내부에서는 소폭 인상해서 소비자들의 전기요금 인상 체감 내성만 높이고 향후 인상 기회를 박탈당할 바에야 차라리 안올리는 편이 낫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상부기관의 공식요청에도 두 자릿수 이하는 절대불가라는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한전 고위 관계자는 “두 자릿수 전기요금이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큰 의미가 없다”며 “5% 이내 인상이라면 차라리 올리지 않는 것이 회사와 주주들을 위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주주들에게 적자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막상 4~5%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작성하려해도 문제다. 사실상 관련 법률을 어기는 인상안을 마련해야 되는데, 요금인상안 관련 한전 4개 부처가 이를 합리화해 이사회에 제출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안이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뒤 추가 인상안 관련 안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인상안 제안 안건이 나오지 않으면 이사회 의결이 될 수가 없다.
주주소송 문제는 여전히 부담되는 이슈다. 두 번째 전기요금 인상안 부결에서 지경부는 “한전의 인상 노력을 소액주주도 인정해 줬을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관련 법 위반사항이 있는 한 언제든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한전 관계자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억제하고 있지만 그동안 전기요금을 잡아서 물가를 얼마나 안정시켰는지 의문”이라며 “전기요금은 관련 법률과 지경부 고시에 의한 것인 만큼 정부가 전기요금에 개입하려면 권고가 아닌 법률과 고시를 바꾸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전기요금 현실화는 지경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내 고위관계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물가당국 등 많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