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이 코앞이다. 한국은 금메달 10개 이상을 따내 종합순위 10위 안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양궁은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개인·단체 4개 전 종목 석권을 노린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양궁은 총 16개 금메달과 9개 은메달, 5개 동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메달 합계(30개)에서 부동의 1위다. 런던에서 한국양궁은 새로운 올림픽 역사에 도전한다. 여자 단체와 남자 단체 금메달은 기본이다. 여기에 여자 개인전이 더해지고 최초로 남자 개인전 우승까지 나오면 4개 골드 싹쓸이다. 결국, 올림픽 10위권 진입도 양궁에 걸린 4개 금메달이 관건이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양궁은 세계 무대의 주류가 아니었다. 미국이 최강자였다. 당시에는 한국이 일본에도 뒤졌다. 남녀 개인·단체가 모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20년간 한국양궁은 올림픽마다 2개 이상의 금메달을 따내며 `신궁의 나라`로 불린다. 여자 단체전은 단 한 번도 1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여자 개인전도 베이징올림픽에서 딱 한 번 중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뺏겼을 뿐이다.
세계 1위 자리는 늘 도전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서울올림픽과 시드니올림픽(2000), 아테네올림픽(2004)에서 모두 금메달 3개씩을 획득했지만, 번번이 남자 개인전에서 좌절했다. 한 번도 4개 전 종목을 석권한 적은 없다. 애틀랜타올림픽(1996)에서 여자 대표팀은 퍼펙트 골드의 신기를 보이며 개인·단체에서 모두 우승했다. 반면에 남자 대표팀은 미국에 밀려 은·동메달에 그쳤다. 원인을 찾았다. 문제는 활 자체에 있었다. 여자 대표팀은 일본산 활을 사용했지만, 남자 대표팀은 주로 미국산 활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세계 활 시장을 장악한 미국 제조업체가 성능을 개선했는데 한국 대표팀에는 신제품을 제공하지 않았다. 꼼수를 쓴 것이다. 우리가 직접 활을 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업계를 수소문해 세 곳을 찾았다. 그러나 모두 장난감용 활만을 제작했다. 국가 대표팀이 장난감 회사와 결탁했다는 모함도 있었지만, 개발은 이어졌다.
드디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산 활로 금메달 4개 중 3개를 땄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역시 금메달 4개 중 3개를 휩쓸었다. 한국산 활을 써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고, 주문이 몰렸다. 국산 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67%다. 나머지 33%는 단가가 높아 구매하지 않는 고객이다. 점유율 100%나 마찬가지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미국 활 제조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급감했다. 미국 양궁 대표팀은 이후 올림픽에서 결승전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일본 제조업체는 아예 활 생산을 포기했다. 지금은 일본 지도자들이 한국 양궁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몰래 캠코더로 찍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선수들은 모두 혹독하게 연습한다. 남들이 다 놀 때 수년간 겨우 하루 이틀 쉬면서 연습해 금메달을 딴다. `자신과 무한 경쟁하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라` `성공의 순간에 위기를 느껴야 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해라`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가져라` 등이 금메달 선수들의 신조다. 한국양궁 선수들은 시상대에 올라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한번 금메달을 따면 또 따기 힘들다. 특히 1등을 하고, 그것을 20년 넘게 지키는 일은 피눈물나는 과정이다. 정말 `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한한 노력과 끊임없는 혁신.` 양궁 태극전사들이 글로벌 넘버원을 꿈꾸는 우리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다.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