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가 너무 빈약합니다. 전력공급력이 모자란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들에게 절전을 부탁하지만 이보다는 자발적인 절전 실천이 가능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난해 9·15 순환정전 이후 전력계통 인력 엘리트화를 추진한 전력거래소는 최근 북미 전력계통 신뢰도 관리기구(NERC)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을 취득한 계통운영전문가를 양성했다. 북미 선진 계통업무를 학습하고 올 여름부터 중앙전력관제센터에서 국내 전력수급을 지휘하는 이들은 국내 전력시장에 제도적 완성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계통운영전문가들은 전력수급 관련 대응 작업의 체계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사시 설비복구 순서와 보고 체계가 북미 전력시장과 비교할 때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하철 중앙전력관리센터 차장은 “북미 전력시장은 전 계통 블랙아웃과 순환정전 훈련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각 부처와 기관의 상황별 행동요령이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며 “9·15 이후 우리나라도 나름 체계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체계적 대응 부문에서 벤치마킹 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9·15 순환정전 이후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순환정전 매뉴얼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력시장 운영을 위한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가장 제도적 기반이 부족한 곳은 바로 요금 분야다.
한승구 중앙전력관제센터 부장은 “북미 전력시장은 필요한 경우 과감한 단전조치를 내린다”며 “이는 국내와 달리 필요시 단전조치를 수용하는 대신 평시 전기요금을 싸게 해주는 요금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기업들만 대상으로 하는 수요자원 시장을 일반인에게도 오픈하고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전체 사용량에 공급량을 맞춰가는 천편일률적인 지금의 계통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올 여름 전력수급 상황에 대해서는 북미시장과 비교해 위험요소가 많다고 경고했다. 특히 전력사용량을 받쳐줄 수 있는 발전소의 수가 적고 단시간에 수만 가구의 전력사용량을 만들어내는 제철공장과 같은 피크부하가 있어 주파수 안정성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복잡한 송전망 상황도 전력계통 운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북미의 경우 하나의 중심 고압 송전선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대나무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국내는 각 설비들이 서로 얽혀있는 거미줄 형태다. 서로 송전망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유사시 특정지역 차단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승구 부장은 “지난달 폭염 이후 장마 등으로 잠시 더위가 주춤하고 있지만 피크부하가 많은 국내 사정상 장마가 끝난 뒤 수급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며 “한 곳에서의 문제가 전 계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