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CJ그룹이 관행을 깨고 초고속 승진제도를 도입했다.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직급별 진급 체류 연한을 기존 20년에서 절반인 10년으로 줄였다. 입사 10년 만에 임원이 될 수 있다. 30대 임원, 30대 최고경영자(CEO) 발탁인사를 단행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제도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입사 10년이면 임원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에 30대 중반의 젊은 대기업 임원 시대도 머지않았다.
대한민국은 아직 연공서열제도를 적용하는 조직도 있지만 성과중심 인사제도가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다. 규모가 크고 보수적일 것 같은 대기업이 앞장서 연공서열제도를 파괴하고 혁신적인 인사 시스템을 도입해 젊은 인재를 발탁하고 있다. 삼성·LG·SK 그룹도 해마다 30·40대 발탁임원을 늘려 인재를 두루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신기술·신제품 개발부문에서 앞서가고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한다.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발탁해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자칫 초고속 승진의 후유증을 앓을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 그룹이나 회사의 핵심 인재로 발탁돼 비전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게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가 역전돼 밀려나게 마련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 평균수명은 여자가 83.8세고 남자는 77세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35세 남녀를 기준으로 여자는 48.8년을, 남자는 42년을 더 살 수 있다. 30대에 임원이 돼서 롱런하면 좋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면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젊은 임원 시대라는 말은 본격적인 `사오정(45세 정년)` 시대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가기 위한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부도 나름대로 대책을 연구 중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책이 아니라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직종과 생태계가 생기겠지만 가이드라인 정도는 필요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역량 있는 젊은 인재를 조기에 발굴해 맘껏 실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일류 기업 문화고, 좋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강조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경영철학도 `인재제일`이었고 많은 기업이 `사람·인재`를 강조한다.
30·40대 젊은 임원도 좋지만 이들 인재가 한창 일할 50·60대에도 맘껏 실력을 펼칠 수 있는 시장과 사회가 필요하다. 사오정이나 오륙도(오륙십대까지 직장생활하면 도둑놈) 같은 굴욕적인 말이 사어(死語)가 되도록 말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