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인프라에만 7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디지털방송콘텐츠지원센터 구축 사업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자 선정이 잘못됐다며 탈락한 사업자가 소송을 벌이는가 하면 사업추진단장이 중간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격 교체되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외부기관을 통해 감리를 받았으나 감리 결과에 대한 이견도 커 좀처럼 해결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디지털방송콘텐츠지원센터(이하 센터)구축 사업은 중소 방송 콘텐츠 제작사가 쉽게 양질의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국책사업이다. 방송 인프라 장비만 700억원 규모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사업을 주관해 지난해 7월 센터 구축 입찰 공고를 냈다. 입찰에는 삼성SDS·SK텔레콤·KT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고, 삼성SD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3차에 걸친 협상을 거쳐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10월 SK텔레콤은 삼성SDS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부당하다며 가처분소송을 냈다.
◇사업자 선정 소송전 비화=사업자 선정에서 0.8점 차이로 떨어진 SK텔레콤은 삼성SDS가 제안한 장비가 부적절하다며 가처분소송을 냈다. SK텔레콤 측은 “삼성SDS가 제안한 카메라 모델은 입찰 기술규격서에 명시된 1080/24P 포맷을 지원하지 못해 영화 촬영에는 쓸 수 없다”며 “삼성SDS의 주장처럼 카메라 헤드(여기서는 카메라 본체를 말함)가 아닌 CCU 컨버팅 변환은 열화·품질 저하 등 문제 때문에 전문가들은 `짝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SDS는 “(자사가 제안한)장비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전송망 RFP에 철저히 따른 것”이라며 “이미 재판에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가처분소송 1심에서 패한 후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90억원이나 비싼 입찰가로 선정된 과정 자체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찰제안가는 삼성SDS와 SK텔레콤이 각각 711억원·619억원이다.
◇석연찮은 추진단장 교체 왜?=지난 4월과 5월에는 센터 추진단장과 팀장을 전격 교체했다. 양유석 원장이 사업 내용을 계속 변경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4월 센터 추진단 팀장이 직위해제됐고 5월에는 추진단장이 전문위원으로 발령났다.
업계 관계자는 “양 원장이 따로 `마음에 두고 있는` 장비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들이 많다”며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될 때 장비업체 변경을 진단한 감리 결과 도출, 추진단장 교체까지 발생하면서 KCA 내부에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인사권을 갖고 있는 원장과 그 지휘를 받는 내부 직원 간의 문제까지 불거진 것 자체는 뭔가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KCA 측은 “인사는 원장의 고유한 권한인데다 전임 단장은 건축 전문가로 새로운 정보인프라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단장을 바꾼 것”이라며 “내부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 12월이던 센터 준공 시기는 내년 7월로 미뤄진 상태다.
◇감리 유야무야도 구설수=KCA가 외부 자문기관에 감리를 받고도 이를 무시한 것도 논란이다. KCA는 소송과 장비업체 계약이 함께 진행되던 지난 2월 갑작스레 `한주KTC`라는 기업을 외부 자문기관으로 선정한 후 감리를 받았다. 한주KTC는 3개월 뒤인 5월 “삼성SDS 컨소시엄이 제안한 일부 장비가 디지털에 적합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KCA는 삼성SDS에 장비 변경 요청을 하지 않았다. KCA 관계자는 “해당 장비 업체들과 계약관계도 마무리해 지금 와서 변경 요청을 하기가 곤란한 시점”이라며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SDS는 “공식적인 요청을 해오면 당연히 검토하겠지만, 아무런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열린 `2차 자문회의`에서는 “장비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S와 계약을 한 장비업계는 감리 결과 신뢰성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 관계자는 “사업을 시작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지난 2월 감리업체를 끌어들여 장비 계약이 한창 진행되던 5월 장비를 바꾸라는 결과를 내놓은 것부터 석연치 않다”며 “당시 감리단장이던 서 모씨가 감리를 끝낸 후 바로 해당 장비업체에 들어가 감리 내용 객관성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